[기자수첩] 이제는 뱅크런 아닌 '뱅크탭' 시대
[기자수첩] 이제는 뱅크런 아닌 '뱅크탭' 시대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3.03.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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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발생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하다. 총자산 276조원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은행이 불과 36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무너진 모습은 국내 은행권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SVB의 파산은 유동성 위기 소식이 불을 지폈다. 은행이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예금주들은 앞 다퉈 돈을 찾아가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 결과 55조원이라는 거액이 하루아침에 빠져나갔다. 은행들이 호환 마마보다 더 두려워한다는 ‘뱅크런(Bank-run)’이 발생한 것이다.

뱅크런은 은행에서 단기간에 예금에 대한 대량의 인출요구가 일어나는 사태를 말한다. 은행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돈을 찾으려는 금융소비자들이 은행 창구로 달려가는(run) 모습에서 착안한 단어다. 국내에서도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따른 뱅크런을 경험했다.

이번에 발생한 SVB의 뱅크런은 급변한 금융환경을 반영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SVB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고 은행 창구에 몰려가지 않았다. 대신 재빨리 스마트폰을 열어 몇 번 두드리는(tap) 것으로 본인의 예금을 전부 빼냈다. 이른바 ‘뱅크탭(Bank-tap)’의 등장이다.

통상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일단 영업점 문을 걸어 잠그고 대출을 회수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선다. 일말의 대응 여력을 갖는 셈이다. 하지만 SVB 사태의 뱅크탭의 경우, 미처 대응하기 전에 더욱 빠르고 파괴적으로 은행을 몰락시켰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뱅크탭의 위험에 자유롭지 못하다. 스마트폰 사용률이 높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국내 모바일 금융환경은 역설적으로 뱅크탭이 발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은행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뱅킹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 도입된 오픈뱅킹을 통해 굳이 은행 앱이 아니더라도 증권·카드·저축은행·상호금융사의 앱을 통해서도 은행 예금의 인출과 이체를 손쉽게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모바일뱅킹 등록자는 1억6922만명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가 약 5144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 1인당 3개의 모바일뱅킹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뱅크탭이 발생한다면 불과 몇 시간 안에 SVB보다 더 빠르고 많은 예금이 인출될 수 있는 환경이다. 기술과 인프라 발전의 과육은 달지만, 그만큼 위험과 부작용도 더 커졌다.

금융당국은 SVB 사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유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보완 장치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뱅크런과 뱅크탭은 은행의 신용 저하에 따른 소비자의 불안 심리에서 출발한다. 금융당국이 은행 시스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