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어디에 있나
[기자수첩]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어디에 있나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12.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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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도 표정이 있다. 계절마다 다른 색을 내고 시간의 깊이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잎을 떨군 가로수가 주는 쓸쓸함을 대신해 새해의 희망을 담은 조형물과 조명이 곳곳에 세워졌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이태원 해밀턴호텔 옆 골목은 여전히 길을 잃은 표정이다.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슬픔을 잊는 게 맞는지, 미안한 마음을 이어가는 게 옳은지 어렵고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마치 50일이 넘게 공전하고 있는 수사상황과 비슷하다. 지난달 1일 명확한 사고원인 규명을 외치며 출범한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수본은 이태원동 관할 기관장들의 부주의로 참사가 일어났다고 보고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서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에 업무상과실치사상 공동정범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지만 큰 진전은 없다.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일부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청장 등 경찰 지휘부에 대한 수사 역시 관련 증거확보가 미진한 실정이다.

또 수사가 참사의 본질과 무관한 핼러윈 위험분석 보고서 삭제 의혹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심을 잡아야할 정치권은 비난과 과오 들추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49재에 불참한 것을 두고 야당에서는 비난을 쏟아냈고, 여권에서는 서해연평해전 영결식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어떤 위로를 했냐며 반격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더 많은지 들춰내는 동안 원인 규명은 늦어졌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출범해 45일의 활동시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났지만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보다는 정쟁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신현영 민주당의원이 참사 당일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 닥터카를 탑승해 의료진의 현장 도착이 늦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조특위는 한동안 ‘닥터카 논란’으로 표류했다.

그러는 사이 참사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10대 생존자는 친구를 두고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속한 참사 수습이 필요한 이유다.

국조특위는 21일 참사발생 후 처음으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국정조사에 전격 합류한 국민의힘은 철저한 조사와 투명한 공개를 약속했다. 부디 이번엔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이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슬픔이 아닌 사건진상 규명으로 해야 할 때다. 정쟁으로 뒷전이 된 희생자들을 위한 진정한 애도와 함께 이태원 거리도 슬픔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