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기자수첩]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2.04.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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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끝없는 만행에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수많은 학교가 파괴됐다. 유치원에 집속탄을 사용해 폭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러시아는 이 같은 보도를 거짓 뉴스라며 호도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세계인들은 러시아의 집단학살을 목격하고 외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있다. 특히 집속탄은 참혹할 정도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비인도적 무기로 국제 비정부기구조차 이를 공식적으로 비판하고 나설 정도다. 급기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러시아 퇴출을 공식화했다.

올렉시 레스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후 어린이 150명이 사망하고, 학교 400곳과 병원 110곳 이상이 파괴됐다. 레스니코프 장관은 지난달 22일 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나누고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러시아가 국가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대량학살 행위뿐 아니라 주민 수십만 명이 음식과 물, 난방 등이 끊긴 채 러시아군에 포위돼 끝없는 폭력을 견뎌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사망자는 지난달 27일 기준(우크라이나 보건부 자료) 352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100명을 훌쩍 뛰어 넘은 어린이 사망자 수가 포함됐다. 어린이 사망자 중에는 생일을 불과 3개월 앞둔 만 6세 소녀 ‘알린사’도 있었다. 이를 목격한 한 남성은 소녀를 사망케 한 곳이 유치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절규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군사시설이라도 된단 말인가!”라며 울부짖었다고 하니….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한다.

현재 러시아는 유치원은 물론 아기들이 모여 있는 보육시설조차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공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병원조차 파괴돼 미숙아들은 지하벙커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아슬아슬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동 병원에 떨어진 포탄으로 부모들은 생명 줄을 매단 어린이들을 안고 병원 지하 대피실로 허겁지겁 대피하고, 신생아 중환자 미숙아들은 간호사들이 인큐베이터와 산소통을 들고 병원 곳곳을 하염없이 뛰어다녔다고 하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평화 협상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던 우크라이나도 이 같은 상황을 목도한 후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러시아 규탄에 앞장서고 있고, 세계 각국은 “전쟁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군의 집속탄에 포격돼 고사리 손을 떨군 채 심폐소생술을 받는 한 소녀의 사진을 접한 오늘, 신철규 시인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가 떠오른다. 신철규 시인의 첫 시집인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실제 어린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슬픔. 아이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슬픔. 7번째 생일을 앞둔 푸른 눈을 가진 우크라이나 소녀의 참혹한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신철규 시인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슬픔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슬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물론 다른 사례에 대한 슬픔이었지만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세계의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의 슬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