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가 신호등 앞에 멈춰서는 이유
[기자수첩] 우리가 신호등 앞에 멈춰서는 이유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3.30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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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없이 코로나19 이전 업무량의 2배를 담당하고 있지만 불만 민원은 끝이 없다. 수시로 달라지는 정책에 욕을 먹는 건 전부 현장 근로자의 몫이다.”

확진자 생활지원비 신청과 취약층 백신접종 예약 지원 업무 등을 담당한 어느 사회복지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와 오미크론 변이 여파로 연일 2~40만명대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과부하를 넘어선 ‘업무 포화’ 상태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오미크론 유행이 감소세로 전환됐다”며 반색하는 분위기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감염은 피하기 힘들 것 같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특히 장기간 적용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이런 결과를 보여주려고 그동안 희생을 강요했냐”며 방역 협조에 대한 허탈감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방역 실패론도 불거졌다. 정점에서의 일일 확진 규모가 당초 정부가 예측한 35만명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62만1205명까지 치솟으면서 예측도 방역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에 정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치명률이 낮다”며 반박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인구 10만명당 누적 사망자는 미국은 289.6명, 이탈리아 261.1명, 영국 239.8명, 프랑스 210.6명 등이다. 한국은 24.7명으로 이들 나라의 대략 10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현재까지의 치명률만 놓고 보면 ‘방역 실패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또 아직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섣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낮은 치명률 하나로 위안을 삼기엔 우리는 너무 큰 희생을 치렀다. 의료진들은 여전히 감염위험 뿐만아니라 과로와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골목 맛집으로 군림하던 식당들의 셔터가 내려졌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잠시멈춤’이라는 신호 아래 일상의 자유를 내려놓기로 했다. 우리가 횡단보도의 붉은색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는 이유는 기다리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역이 완화되고 있는 ‘일상회복’의 신호가 서서히 켜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안전한가. 사람들은 이제 ‘각자도생(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뜻)’을 외치고 있다. 정부가 주는 신호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시로 바뀌는 방역‧의료 정책에 국민들은 물론 담당자들까지 혼란을 겪으며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도 했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는 코로나 특성에 일관성을 갖춘 정책추진이 슆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걸려보니 너무 아프다”는 호소에도 치명률만 운운하며 계절독감론을 펼치고 있는 정부. 확진후 최소 2개월 이상 증상이 계속되는 롱코비드 증후군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는 행태.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한 것은 정확한 정보였다.

오미크론 변이의 ‘계절독감론’을 두고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속적으로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 다른 나라의 치명률이 더 높다 하더라도 연일 200명을 웃도는 사망자가 나오는 현실이 안전한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치료를 받다 사망했고 어떤 이는 아프다는 호소에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홀로 격리된 채 죽어갔다. 이들에게 코로나19 치명률은 100%였고, 0.13이라는 낮은 숫자는 무의미했다.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원한 정부는 ‘기저질환’과 ‘치명률’만 되뇌는 모습은 아닐터다. 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기저질환도 백신 알러지도 없는 사람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의 방역정책을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모두 정부의 탓도 아니다. 하지만 방역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실책이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담당자들조차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수시로 바뀌는 정책, 형평성을 잃은 정책으로 소요된 사회적 비용,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혼란을 겪은 현장,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국민들.

정부는 ‘방역실패’라는 말보다 정부의 신호에 일사분란하게 백신을 접종하고 일상을 멈춘 국민들이 신뢰를 잃어버린 현실을 더욱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