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연금은 왜 경계현 사장을 반대했을까
[기자수첩] 국민연금은 왜 경계현 사장을 반대했을까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2.03.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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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국민연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900여개가 넘는 상장사에 투자 중인 국민연금이 이번에도 무더기 반대표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주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등의 사내외이사 선임에 반대해 눈길을 끌었다.

국민연금은 이달 14일 “경 사장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의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해 반대한다”고 공시했다.

의문은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다. 경 사장은 지난 2020년 삼성전기 대표를 맡은 뒤 사상 최대실적을 올렸고 그 공로로 취임 2년 만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장 겸 대표에 내정됐다. 그는 삼성전기 대표를 맡아 고객사 다변화로 삼성전자 매출비중을 줄였고 임직원들과 적극 소통해 사내문화도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경 사장에 대해 ‘기업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한 건 무슨 이유일까.

국민연금 측에 어떤 기업가치 훼손사례가 있는지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900여개가 넘는 기업에 투자 중인데 안건이 대여섯 개씩 된다”며 “내부적으로 찬·반을 결정한 이유는 있지만 이유를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규정, 지침 상 공시토록 한 범위 외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며 “기업가치 훼손, 시장질서 교란행위, 미공개 중요정보를 알리는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최대 상장기업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를 표시하고도 명확한 이유는 공개하지 않은 셈이다.

기업의 주주라면 누구나 주총안건에 반대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정량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외모, 분위기 등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결정도 허용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관리 자금을 기금으로 운용하는 대리권자다. 경 사장이 정말 결격사유가 있었다면 반대의사만 표시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론화 한 뒤 표를 모으는 행위 또는 회사 경영진과 대화 등도 좋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야 했다. 경영진에 결격사유가 있는 것처럼 알려놓고선 구체적인 내용은 대외비라고 둘러대는 것도 기업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다.

물론 그동안 국민연금의 반대표 이력을 살펴보면 기업가치 훼손까지 보긴 힘들다. 안타깝게도 최근 3년 간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안건 중 부결률은 5%도 채 안된다. 2019년 3.5%, 2020년 4.6%, 지난해 2.5%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여타 주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