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새정부는 ‘탈완벽’하기를
[기자수첩] 새정부는 ‘탈완벽’하기를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3.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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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 번화가 곳곳에 쓰레기통이 철거됐다. 쓰레기통에서 넘쳐 흘러내리는 쓰레기와 악취를 없애 도시 미관을 정화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쓰레기통 주변에만 넘쳐나던 쓰레기는 길 곳곳과 화단에 버려졌고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쓰레기 없는 거리’라는 이상에 매몰된 정책은 재고되고 결국 쓰레기통은 다시 길거리로 돌아왔다. ‘체계적인 관리’를 전제로.

최근 불거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논란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며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의 정상 가동을 주문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향후 60년간 원전이 주력이라고 입장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즉각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주력 기저 전원으로 60년 동안 우리 원전이 그렇게 잘 관리돼야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주력 기저 전원이란 전력 수요가 가장 낮은 시간대에 가동되는 발전기를 일컫는데 일각에서 ‘주력’에만 집착해 핵심 의미를 혼동했다는 지적이다.

또 애초에 정부는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바 없으며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골자로 2084년까지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해명처럼 그동안 원전은 ‘잘’ 관리되고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선언한 이후 원전 산업이 힘을 잃어갔다고 주장한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는 건설이 취소됐고 고리 2호기 등 기존 원전 11기의 수명 연장도 금지됐다. 또 원전 가동이 줄면서 수많은 기술 인력도 현장을 떠났다. 세계에서 경제성은 물론 기술력까지 인정받았던 ‘원전’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고위험 폐기 대상 1호’ 쯤으로 전락했다.

대신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사업에 주력했고 전국 곳곳에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섰다. 태양광 사업의 투자 실익을 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지인은 “전국에 빈 땅만 있으면 태양광을 설치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게 지어진 ‘태양광’은 친환경적이기만 했을까. 숲을 깍아내 조성한 태양광 산지만 1만여곳에 달한다. 때문에 장마철 산사태 피해 등을 이유로 주민과 소송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심지어 발전량도 안정적이지 않아 원전을 대체할 전기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간에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발생한 손실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10월 24일 이후 원전 조기 폐쇄 등에 따른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실 규모는 최소 1조4445억원으로 추정된다.

탈원전 정책은 국민안전과 환경보호를 기치로 내걸고 추진됐다. 특히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증폭된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으로 ‘탈원전 정책’에 당위성이 부여됐다.

물론 원전이 다 사라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뚜렷한 에너지원이 없고 인접국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것도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하면 그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원전 폐기가 아닌 ‘안전한 관리’에 충분한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책은 이상을 바라보되 현실을 딛고 있어야 한다. 대안없이 급속도로 추진된 정책은 결국 부작용만 낳은 채 폐기되기 마련이다. 오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국민의 선택을 받을 1인과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신중한 정책으로 사회 전반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