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흔들리는 김치 주권, 정부의 민망한 '엄지척'
[기자수첩] 흔들리는 김치 주권, 정부의 민망한 '엄지척'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0.12.0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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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소울푸드이자 발효식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김치는 글로벌 무대에서도 재조명 받고 있다. 올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집밥 소비 확대와 함께 김치의 면역력 증진 효과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 김치를 찾는 해외 소비자들이 부쩍 늘어난 상황이다. 

실제 올 10월까지 김치 수출은 약 1억2000만달러(1303억원)로 2년 연속 1억달러 수출고를 달성한 것은 물론,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수출국도 전 세계 80여개국에 이른다. 

우리 기업들도 김치 수출확대에 큰 몫을 담당했다. 수출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상 종가집과 CJ제일제당의 비비고, 풀무원 등 식품기업들은 수출국 취향과 특성에 맞춘 다양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으로 한국의 김치를 널리 전파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김치공장을 착공 중인 대상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김치 생산에 나서, 김치 소비가 크게 늘어난 북미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정부는 김치가 대표 K-푸드로서 각광 받는 것을 기념하고자, 올 초 김치산업진흥법 개정으로 ‘김치의 날’을 제정하는 근거를 만들고 지난 11월22일 처음으로 김치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김치의 날은 식품으로서는 유일한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김장문화를 계승하면서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김치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다. 행사에 참석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김치종주국의 자긍심으로 1000년을 이어온 위대한 맛의 유산을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는 김치 수출성장에 초점을 맞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불편한 사실은 슬쩍 감추고 있다. 한국은 김치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다. 올 10월까지 김치 수입량은 23만1800여톤(t)으로 같은 기간 수출량 3만2800여t보다 7배나 많다. 

10년 전인 2010년 김치 수출량은 2만9700여t톤으로 10년 새 3100t가량 늘어난 반면에, 수입량은 이보다 10배 이상인 3만9000t이 늘어났다. 수입 김치의 99%는 중국산이다. 정부는 2015년 김치의 중국 수출 길을 본격 열었지만, 올 들어 10월까지 현지에 유통된 한국산 김치는 고작 56t에 불과하다. 

최근 중국의 환구시보가 이런 점을 두고 ‘김치종주국의 굴욕’이라는 보도를 내보내며 도발했고, 일본도 잊을만하면 종종 ‘기무치’를 앞세워 자기네가 김치 원조라는 억지를 부리는 실정이다. 김치 주권에 대한 위협은 늘 상존한다. 정부가 당장의 보이는 수치만 급급한 채 김치를 대표 K-푸드라고 치켜세우기엔, 지금의 상황은 다소 민망할 정도다.    

정부는 단순히 성과 치적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김치 주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련 산업과 문화 육성, 식량안보 차원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소통하며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진정성을 보이는 게 급선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