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세는 없다
[기자수첩] 대세는 없다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6.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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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짜피 대세는 이낙연이다.'

정치권은 물론 여론에서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 대세론은 공공연하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느닷없이 이 전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지 햇수로만 약 3년이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 선거까진 아직 2년이 남았다. 검증된 건 아니지만, 조기부터 대선가도를 달리던 후보가 실제 대선까지 갔던 경우는 기억에 없다. 최근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만 해도 이 전 총리와 차기 대선 후보 1~2위를 다투다가 4·15 총선 참패 후 온데간데없이 순위가 사라졌다.

대세론을 형성한 주자는 '밴드왜건 효과(이길 가능성이 큰 강한 후보에게 유권자의 지지가 쏠리는 현상)'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 쫓아가는 주자는 '언더독(강한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약한 후보를 지지해 선거 판세를 바꾸는 것)'의 반란을 노려 경선 1년 반쯤 전부터 경쟁에 불을 붙인다. 이때 판세를 결과로 직결하는 건 시기상조다.

가령 2002년 16대 대선을 1년 반정도 남겨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대세론을 형성했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당시 바닥을 기어다녔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고, 대한민국은 엄청난 이변을 실감했다. 2007년 대선을 1년 반쯤 앞두고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고건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지만, 반전에 성공했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 9일이다. 당 경선은 보통 본선을 4~5개월 앞두고 치러진다. 내년 말 경선을 실시한다면 선거는 1년 반이 남은 셈이다. 앞서 사례처럼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한 주자는 집중 견제를 받기 마련이다.

176석 더불어민주당도 오는 8월 전국당원대표자회의(전당대회)를 앞두고 분화를 시작했다. 친 문재인 계파의 핵심 '부엉이 모임' 대부분과 전혜숙 의원 등 옛 손학규 계열, 설훈 최고위원 등 동교동계는 이 전 총리에 베팅(지지)을 걸었다. 민주당 당헌은 '당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하고자 할 땐 대선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표 임기는 2년이지만, 대선 주자는 이전에 당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 전 총리가 당권을 쥔 후 대선에 출마한다면 시간상 7개월에 불과한 대표 임기지만, 여당 안팎에선 이 기간을 '국정운영 골든타임(중요시기)'라고 본다. 친낙계(친이낙연계)가 형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홍영표·우원식 의원 등이 이 전 총리 견제에 나섰다.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 "당대표가 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임기를 모두 채우겠다"고까지 거론한 상태다. 홍 의원은 이 전 총리를 겨냥해 "과거 사례를 보면 대선 주자가 당권까지 가지면 대선이 조기 과열되고 줄 세우기와 사당화, 대선 경선 불공정 시비 등으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부각하기도 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와 대선 후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쏠리는 이유는 이 전 총리의 불패 신화 때문이다. 21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이 전 총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특히 2003년에는 본인이 몸 담고 있던 새천년민주당이 위기를 맞았고, 열린우리당과 분당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발의까지 나오면서 새천년민주당은 이전까지 여당이었음에도 17대 총선에서 9석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당적을 옮기지 않고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인 9명 중 한 명으로 기록되는 이변을 만들었다. 18~19대 총선까지 4선 중진에 올랐고, 2014년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행정부에 발을 딛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까지 오르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어짜피 관건은 '감성'이다.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말이 생각난다. 4·15 총선 개표함 뚜껑을 열기 전부터 야권에서 유일하게 보수 참패 가능성을 언급했던 박 전 위원장은 "선거라는 것은 감성전이다. 맞느냐, 틀리냐의 논리 문제가 아니고 누구의 감성을 건드리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