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조건 비싼 집 내놔"…돈에 눈먼 정비사업
[기자수첩] "무조건 비싼 집 내놔"…돈에 눈먼 정비사업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0.04.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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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렸을 때는 이 말의 의미가 뭔지 몰랐다. 헌 집을 줄 테니 새 집을 달라니. 이게 무슨 배짱인가?

어른이 된 지금도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헌 집을 주고 새 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게 가능한 방법이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있었다. 바로 정비사업. 기존 아파트 단지나 노후 주택 밀집 단지에 아파트를 새로 짓는 사업. 이 사업은 말 그대로 헌 집을 내놓을 테니 새 집을 내놓으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니, 헌 집을 내놓을 테니 훨씬 비싼 집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정비사업은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그로 인한 혜택을 모든 국민이 공유한다는 취지다. 그래서 사업이라는 접미사가 붙음에도 불구하고 공적이라는 얘기를 한다.

흔히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조차 이런 측면을 외면하고, '사업'이라는 단어에 집착한다. 잘 되면 '이득' 안 되면 '자기 손해'라는 식으로 정비사업을 평가 절하한다.

이런 막무가내식 해석에 매몰된 몇몇 조합원들은 정비사업을 마치 돈벌이 수단인 양 대한다. 근본적 목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이익을 챙길까를 고민한다는 얘기다.

물론, 모든 조합원이 이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다수 조합원은 오랜 삶의 터전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대한민국에서 평생 모아야 살 수 있다는 집 한 채를 기대하며 정비사업이라는 배를 탄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일들을 이용해 사업비를 착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문제다.

국토부는 지난해 서울시, 감정원 등과 함께 서울의 주요 정비사업지를 대상으로 위법행위를 점검했다.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투명한 정비사업을 외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서울 정비사업에서만 1년간 쏟아진 위법행위가 무려 162건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어떤 사업도 이처럼 무법천지인 것은 없다.

원인은 제도가 허술했거나 정부와 언론이 무책임했거나 법이 솜방이였거나 이들 중 하나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모든 분야에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비사업은 사각지대를 굳건히 지킨다.

조합장은 관할 구청이 무시하지 못하는 입김을 발휘하고, 그런 조합장이 또다시 시공사와 결탁한다. 사익에 취한 몇몇 공무원과 조합 세력, 시공사가 짜놓은 판 아래서 조합원과 지역 주민, 넓게는 국민 전체가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정비사업에서 부정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선량한 국민에게 부르는 노래를 이제는 멈춰야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