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관리공사가 남긴 갑질민원 처리의 '나쁜 예'
[기자수첩] 건설관리공사가 남긴 갑질민원 처리의 '나쁜 예'
  • 이소현 기자
  • 승인 2019.11.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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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부에서 발생하는 갑질과 폭언을 근절하고 근로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7월16일 근로기준법 제76조,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처음 이 법 시행 당시 일각에서는 '괴롭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근로자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인권 향상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다만, 새 법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여러 사례가 모이고, 이를 바탕으로 적용 범위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 법이 가진 허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한국건설관리공사에서 발생했다. 건설관리공사는 지난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한 바 있다.

건설관리공사 입장에서는 갑질 민원에 대한 첫 감사였던 만큼, 적절한 조치와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어떤 선례를 남기느냐에 따라 갑질을 대하는 공사 조직원들의 자세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관리공사는 이번 감사에서 치명적인 실수와 함께 '나쁜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감사보고서에 피해자의 실명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회사가 오히려 '이 사람이 피해자'라고 소문낸 꼴이니,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안심하고 민원을 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2차 피해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처벌 근거는 '근로기준법' 제 76조의 2와 3이다. 이는 갑질 당사자인 피의자와 피해자에 대해서만 적시하고 있을 뿐, 피해자 정보 유출 등 2차 피해 유발 행위를 금지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76조의 3 제6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이번 사건에서 건설관리공사가 보여준 안일한 태도 역시 얼기설기 짜인 허술한 법망에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

구멍 난 옷을 꿰매려면 실과 바늘이 필요하듯이, 이번 사건이 법의 흠결을 메우기 위한 한올의 실이 되길 바란다.

[신아일보] 이소현 기자

sohy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