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대학은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우리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채 매 학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교육자로서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의 신분으로 강의를 듣고 연구하던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생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당시 느끼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했던 마음들이 하나씩 잊히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모습을 바탕으로 지난날을 더듬어 보는 것도 바쁘지 않을 듯해 몇 글자 적어본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대학 입학은 고등학교에서의 굴레를 벗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를 자유를 맞이하는 시기인 것 같다. 하지만 손에 주어진 자유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해 많이 방황하게 될 수도 있는 매우 독특한 부분이기도 하다.
타인에 의해 결정된 길을 걷고 있다가 자의에 의해 모든 것을 선택할 때는 처음의 해방감 뒤로 예상치 못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동반되는 것 같다. 과거의 나 또한 그랬고, 현재 우리 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이들을 위해서 교육자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스스로 답문을 해보지만, 명쾌한 해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요즘은 대학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기능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교수는 교육과 연구를 모두 담당하는 매우 독특한 직업이다. 여기에 있어 본인은 교수가 갖는 일차적인 직업적 사명은 교육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대학평가를 비롯해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더욱 강력해지면서, 교육자보다 이런 부분에 더 유리하고 적합한 연구자로의 비중을 크게 두는 분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연구자의 입장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환영하지만, 이로 인해서 교육자로의 위치에 소홀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나의 경험에서 많은 부분 비롯된 것이라 상당히 주관적임을 밝히는 바다. 본인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모두 경험하면서, 학부 교육에 큰 애정을 가지고 강의하시는 교수님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장 큰 이유를 돌이켜보면, 아마도 진로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던 막연한 시기에 교수님이 가지고 있던 학생에 대한 열정이 미래에 대한 많은 불안감을 해소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원으로 진학까지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교수의 입장에서는 대학원생을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에 힘쓰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단순 학부교육과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임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다만, 필자의 인생에 있어 방황하던 대학생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기억하면서 자존감을 심어줬던 그 과거 은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현재 교육자로서의 사명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매번 강단에 서면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웃음으로 맞이하는 우리 학생들. 청춘들을 바라보며 나만 홀로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교수들은 대학에서 나이와 함께 교육 및 연구철학이 바뀌어 가겠지만, 캠퍼스를 활보하는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두서없이 써 내린 글 안에서 우리 학생들의 앞날에 작은 이바지를 할 수 있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의 삶을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