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병상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전해졌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병마에 시달리는 고통 속에서가 아니라 노환으로 천수를 누리고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주변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면서 고요히 소천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희호 여사를 기억할 때 늘 습관처럼 정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기억하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질곡의 우리 현대사에서 어느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라 독립적 인격체로서 이희호라는 고유명사로 불려 마땅한 무한 족적의 여성이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한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면 사회구성원들의 점진적 노력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역사는 어느 한 순간을 돌아보면 별안간 돌연변이적인 상황이 생기고 그러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선구적 인물에 의해 한 번에 몇 단계를 뛰어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으로 개발독재의 대척점에 서서 줄기차게 민주화를 이끌어 낸 김대중이라는 정치가의 배우자로서 어떤 면에서는 부당하게 오해 받거나 핍박받고 이유 없는 증오의 대상이 됐던 경우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여성사회와 여성교육이란 지난한 두 축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역사의 숨은 견인차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 여성사, 여성권리 신장의 역사는 이희호라는 한 인간의 의지와 실천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평생동지로서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끌어낸 김대중이란 정치인의 여성교육과 사회적 지위, 권리신장에 대한 신념과 실천은 고스란히 이희호 여사의 몫이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재야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외쳐왔고, 그는 단지 입으로 외치는 자가 아니라 양심으로 실천하는 운동가로 행동했다.
개발독재의 시대를 끝내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의지는 세계 초유의 여성가족부가 정부내각에 자리하는 제도화를 이룬다. 여성가족부라는 정부 부처로 제도화 된 것은 전적으로 이희호 그의 공이다. 이로 인해 비록 만족스럽지는 아니해도 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괄목할 만한 발전은 세계적으로 그 비슷한 예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세상을 보면서 나와 같으면 옳고, 다르면 그르다고 보려는 적대적 편가르기를 잊고 산다. 그러나 세상은 여자 아니면 남자로 된 자연공동체다. 다른 것은 다르게 같은 것은 같은 기준으로 보게 하고 상대의 역할과 역량을 존중하는 준거를 제도화 내지 법제화 한 것이 이희호 그의 큰 뜻이고 양심적 실천의 결과인 것이다.
필자는 행여 그의 영면에 이데올로기적 좌우 잣대를 들이대는 졸렬한 우리 사회의 병통이 고개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늘 탁월한 지성과 양심으로 맺힌 매듭을 풀어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선지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희호 그는 대한민국 여성사, 여성사회사, 여권사에서 선지자이다.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우리사회가 입은 그의 후덕에 비하면 지극히 당연한 예우다. 평생동지 김대중 전 대통령 곁으로 가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빌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