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정치와 권력에서 말과 글은 무엇인가
[신아세평] 정치와 권력에서 말과 글은 무엇인가
  • 신아일보
  • 승인 2019.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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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화인류학자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자이고 사회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위대한 유산 '슬픈열대'를 남겼다. 그는 '슬픈열대'를 통해 우리가 흔히 절대적 이분법으로 차별해 왔던 미개한 열대지역 종족과 그들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소위 문명한 인류의 과오를 통렬히 비판하고 나와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에 대한 이정표를 남겼다.

인간은 말과 글을 쓴다. 말과 글은 인간의 생각과 의지를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말과 글에는 그것을 습득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담겨있다.

정치와 권력은 말과 글로 할 때 최선이고 물리적 강제력으로 할 때 하수다. 정치와 권력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생각과 의지, 가치와 신념을 담은 말과 글로 가늠할 수 있고 향후 행동을 예측하는 풍향계가 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정부 출범 2주년을 하루 앞 두고 국민과의 대화 언론 생방 대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즉석 제안된 여야5당 대표와 대통령 회담 성사를 두고 설왕설래다. 패스트트랙 통과를 계기로 꼬일대로 꼬인 정국의 돌파구를 열고싶은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에서 대통령의 말에 의지와 신념은 확실히 보였으나 또 다른 한 축인 관용과 포용을 담는 그릇은 아주 작거나 보이지 않았다.

2년 전 취임사로 돌아가 보자. 그대로 몇 소절을 옮긴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세상을 열어 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중심되는 단어를 추려보면 약속, 소통, 통합, 공존, 열정, 겸손, 특권, 경험하지 못한 나라, 잘못된 관행과 과감한 결별, 평등, 공정, 정의로 간추려진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곧 대통령의 말이자 글이며 생각과 의지를 담은 가장 큰 그릇이다.

이런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를 되새기고 재확인하는 자리가 국민과의 대담이었다. 결과를 두고 뒷말도 많다. 질문자는 보여도 정작 답변자이고 주역인 대통령은 안보였다는 혹평도 나왔다. 모두가 상대적으로 보면 다를 수 있다.

문대통령은 말과 글은 취임사에서 보였듯이 의지와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이 담긴 언어를 포기하지 않은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에 가깝다. 어휘는 의미의 최소단위다. 어휘가 문장을 이루면 의지나 가치가 되고, 문장이 모이면 명제가 돼 강령이나 정치의 목표가 된다.

신념은 때로는 절대적이다. 신념과잉 때문이다. 신념과잉은 독선과 친하다. 독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념과잉과 절대성이 인류에게 돌이킬수 없는 재앙을 준 역사가 그리 멀지않다. 신념과잉은 편가르기, 독선·독재, 전체주의와 통하고 관용과 포용을 포장지로만 쓰려고 한다.

개발독선이 개발독재가 돼 우리의 오늘 날 깊은 상처로 남아 아직도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증거다.

국가나 사회지도자의 건강한 신념과 가치관은 혁신과 창조를 이끌어 내 그 국민과 구성원을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그 신념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은 지지와 동의, 관용과 포용이다.

신념과잉은 화를 부른다. 신념 절대성은 국가나 사회를 파국으로 이끈다. 신념과잉이나 절대성은 자칫 약자를 짓누르는 아이러니 낳는다.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신념과잉이 결과적으로 약자른 더 약하게 부자를 더 강하게 만든 의도치 않던 결과를 보라.

'슬픈열대'는 미개한 열대라서 슬픈게 아니라 문명이란 이름으로 문화절대주의와 규범절대 주의로만 평가하는 강자의 잘 못된 권력이 슬픈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 도 지나가는데 문득 '나와 같다면 옳고, 다르다면 그른 것인가'라는 법언이 떠오른다.

/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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