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로부터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이 기업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악습에 발목을 붙잡히고 있다. 핵심 환경인 5세대(G) 이동통신의 세계 첫 상용화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시시각각 변할 세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나오는 온갖 비판적인 주장에 멍들고 있다.
발 빠른 의사결정을 해도 생존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환경에서 KT와 황창규 회장 흔들기는 그렇게 도를 넘어 우려할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KT는 민영화 됐다고 해도 여전히 정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4월8일 기준 KT의 최대주주는 11.94%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이외 일본 NTT도코모가 5.46%, 우리사주조합이 0.46%의 지분을, 외국인 지분은 50%에 육박하고 소액주주가 나머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KT는 이런 환경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민영화 직후 첫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용경 전 사장은 지난 2005년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났고, 노무현 정권 때 남중수 전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 수사로 구속돼 불명예 퇴진을 했다. 이어 이석채 전 회장도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석채 전 회장은 최근에도 채용비리 논란으로 회자되고 있다.
엉뚱하게도 불똥은 황창규 회장으로 튀었다. 황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일명 ‘상품권깡’으로 11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99명을 후원하고 골프 비용 등 접대비를 사용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번번이 기각했다. 이 사건은 올해 1월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앞서 황 회장은 지난해 서울 충정로 KT통신국 화재 발생을 이유로 국회로부터 퇴진압박을 받기도 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KT 채용비리 의혹의 경우, 대부분 이석채 전 회장 때 벌어진 일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황 회장을 자리에서 내몰기 위해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잇단 의혹만 제기되고 있을 뿐, CEO로써 물러날 수밖에 없는 사유가 명확치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상황은 이렇지만, 정계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현재도 황 회장을 채용비리 의혹과 연관시켜 흔들기를 지속하는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황 회장은 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직후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임기만료 시점인 내년 정기주주총회까지 임무를 다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책임을 묻고 퇴진 여부를 가늠해야겠지만, 황 회장은 ‘임기 만료’로 대답을 확실히 했다.
관련업계에선 황 회장 본인이 물러나면 역대 CEO의 3연속 불명예 퇴진이라는 씁쓸한 기록을 남기게 되기 때문에 이런 오명을 끊겠다는 의지로 외풍에 맞서 힘들게 싸우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정치권에선 최근 KT가 2017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공단에 황 회장의 국정농단 의혹들을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는 등 비호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국민연금은 2017년 2월14일 서한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연루된 의혹들에 대한 해명과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고, KT는 회신에서 잇단 의혹은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게 골자다. 당시 CEO 추천위원회도 황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연임을 찬성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민연금이 사실상 황 회장의 연임을 도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곱씹어볼 문제다. KT가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국민연금의 지지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결과론적으론 정부기관이 대주주라는 이유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색에 따라 CEO가 바뀌었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근본 원인부터 손을 대는 게 수순이다.
기업은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고 자유로울 때 지속성장 가능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정치권과 일부 모사꾼이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닌 CEO와 임직원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과 정치 논리는 물과 기름이 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