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피고인 신분으로 또다시 법정에 선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 기소돼 1996년 1심과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지 23년 만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 목격담을 남긴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조 신부 가족은 5·18 기념재단, 5·18 3단체 등과 함께 출판 및 배포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지법 민사14부는 작년 9월13일 1심에서 회고록에 허위 사실이 쓰였다며 원고에게 배상하고 일부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는 회고록 출판·배포를 금지한다고 판결했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전 씨의 재판은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진행된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지만 ‘광주’라는 특수성이 겹쳐지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전씨 측이 고령에 건강상 문제가 있고 광주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며 법원에 재판관할 이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이번 재판은 회고록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취지로 쓴 내용이 허위 사실인지, 전 씨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썼는지가 쟁점이다.
우선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와 검찰 조사 등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전일빌딩 10층 외벽 등에서 외부에서 날아든 탄흔이 다수 발견됐고, 국과수도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했다. 검찰도 미국대사관 비밀전문에 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고 실제로 헬기에서 총격이 이뤄졌다고 기록된 것을 확인하고 당시 광주 진압 상황을 보고받은 전 씨가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 씨는 회고록에 ‘헬리콥터의 기총소사에 의한 총격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당시 항공단장의 진술로 증명되었다’고 기술한 데 이어 ‘미국인 목사라는 피터슨이나 조비오 신부나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며 ‘목사가 아닌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전 씨가 광주지법 재판정에 서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정한 사과일 것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사실로 입증된 사건까지 왜곡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전 씨의 왜곡된 주장이 결국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국회의원’ 같은 부작용을 낳는 근거가 되고 있다.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망한 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자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역사 앞에 진심어린 용서를 빌지 않는 자의 죄형은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새기길 바란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