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선 당시의 일이다. 당시 공화당의 후보는 부시(George Waker Bush) 텍사스 주지사였고, 민주당의 후보는 엘 고어(Al Gore)부통령 이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총 득표수에서 엘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보다 54만3895표를 더 얻었지만 미국의 독특한 선거방식(州별 대의원 확보 방식)으로 인해 부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제는 선거 막바지 플로리다 주 등 3개 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가 확보한 대의원 수가 246대 255 명으로써 당선에 이르는 270명에 미달하였기 때문에, 25명의 대의원이 걸린 플로리다 주의 선거 결과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그런데 플로리다 주는 부시 후보의 동생인 젭 부시(Jeb Bush)가 주지사로 재임 중이었다. 결국 플로리다 주에서 개표부정의 의혹이 일어나 자칫하면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위기에 닥쳤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엘 고어 부통령은 즉각 대선 결과에 승복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엘 고어 후보는 자칫하면 이 사건이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크나큰 오명으로 기록될 수 있으며, 미국 헌정사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 속에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이것이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이끈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인식이다.
최근 정치권에 때 아닌 대선불복 vs 헌법불복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하여 여론 조작을 하였다는 법원의 1심 판단이다. 이로 인해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법정구속을 당했다.
이를 지켜본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 사건을 문재인 대통령과 연결시켰다. 누가 봐도 김경수 경남지사는 문대통령의 측근 중 최 측근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역시 드루킹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공세 차원에서 충분히 거론할 수 있는 호재를 만난 것이다.
그러자 여당인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촛불 정신으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탄핵 적폐 세력이 언급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하면서 대선불복을 하자는 것이냐고 역공을 취했다.
야당은 비판은 근본 임무다. 정부와 여당의 티끌만한 잘못도 파고들고 키우는 것이 야당의 생리다. 지금의 여당인 민주당 역시 야당 시절 그래왔다. 그렇다 해도 아직 1심 판결에 불과한 사건에 대해 야당의 지나친 확대해석은 무리수가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이보다 문제는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은 김경수 지사에게 유죄를 선언한 1심 재판부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겠다’, ‘적폐 세력이다’ 하면서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심지어 주심 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비서실에 근무한 것을 거론하며 현 정부에 대한 법원 내 적폐세력의 반격이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정권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여당의 인식이 참으로 조악스럽다.
“법관은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뿐이다”라는 사법 정신을 한낱 개인적 인연과 결부시키려는 인식은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다. 사법체계가 흔들리면 법치주의라는 헌법정신이 흔들리고 결국 국가를 부정하는 사태에 이른다.
야당의 정치공세에 대해 대선불복이니 하는 비판을 가하기 전에, 여당부터 사법체계를 흔듦으로써 헌법불복이 아니냐는 비판부터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