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으로 표면화된 갑질 문제는 피죤 창업주의 ‘청부폭행’,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미스터피자 정우현 사장 등 오너들의 갑질 뿐 아니라 박찬주 대장, 고위 외교관 갑질 등이 연이어 발생하자 사회 지도층 전반의 횡포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한 최근 발생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 행각이 발각되면서 이제는 갑질문화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언론 속에 보여지는 기업 오너나 지도층의 영화속에서도 보기 힘든 상상을 초월한 갑질도 문제지만 ‘을’의 위치에서 고통과 서러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또 다른 ‘병’이나 ‘정’에게 횡포를 부리는 갑질의 뫼비우스의 띠가 형성되면서 일상속에서 ‘갑질의 대중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타인의 갑질에 대해서는 비난하면서, 자기의 갑질에 대해서는 죄의식 없이 권리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내로남불’이 횡횡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갑·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지만 유독 한국에서 갑질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차별·억압적인 위계적 권위주의 문화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금권만능주의적 천민자본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장유유서와 관존민비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문화에 돈과 이익,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하든지 용납되는 잘못된 자본주의가 결합해 무시와 비하를 통한 모멸감을 상대방에게 주는 방법으로 자기 스스로를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내가 그들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갑질 행태의 핵심인 것이다.
갑질은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한 우리 헌법 정신을 근본적으로 해하는 행동으로,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무신정변의 원인이 문신들의 갑질에 무신들이 반발하면서 발생한 것처럼 국가의 운명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기 때문에 반드시 청산돼야 하지만 그 문화적 뿌리가 깊다는 점에서 제도·정책적 접근 뿐 아니라 문화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제도·정책적 방법으로는 근로기준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을 통해 내부 고발자를 강하게 보호해 갑질 폭로를 활성화하고, 갑질을 행한 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한 관련법과 규정 등을 정비해 갑질의 댓가는 혹독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대학입학과 성공에만 매몰돼 이기심과 무책임을 갖게 되는 교육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 배려와 이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고양함으로써 갑질 문화가 소멸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귀거래사’로 유명한 중국 동진의 도연명(365~427년)은 자신의 아들에게 노비를 보내면서 “이 자도 남의 소중한 자식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 대해주거라”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는 논어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가르침을 실천한 것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갑질문화 청산의 해법임을 새삼스럽게 알려주는 일화라 할 것이다.
더 이상 추한 사회지도층의 갑질 이야기가 아닌 도연명과 같이 배려와 공감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