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산과 사암’ 정약용 호 변경 추진에 대해…
[기자수첩] ‘다산과 사암’ 정약용 호 변경 추진에 대해…
  • 정원영 기자
  • 승인 2018.11.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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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함께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다산 정약용,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가 정약용의 호인 ‘다산’이 포함되는 시의 모든 명칭을 점차 사암으로 변경해 나간다는 방침에 따라 시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나며 반대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산문화제. 다산 유적지’가 ‘사암문화제. 사암 유적지’로, ‘다산홀. 시청광장’이 ‘사암홀. 사암 광장’으로, ‘도농역’은 ‘사암역’으로, 바뀐다. 이외에도 ‘다산1동. 다산2동’이 ‘사암동과 열수동’으로의 중장기 검토에 들어갔다.

남양주시는 ‘사암’ 명칭 변경에 대해 ‘자찬묘지명에 사암 사용’을 주 근거로 삼았다. ‘남양주시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정약용이 다산이란 호를 사용했다는 근거는 미약하다. 다산 본인도 ’다산‘이란 호보다 ’사암‘이란 호를 즐겨 사용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정약용의 호는 다산, 삼미, 탁옹, 여유당, 자하도인, 귀농, 사암, 열수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산’이란 호가 현대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약용은 자신의 집필집에서 ‘사암’이란 호를 많이 드러내 놓고 있다.

강진 유배시절 머물렀던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의 다른 이름이 다산이다. 대부분의 호를 지형에서 따오듯이 정약용 역시 만덕산 중턱에 머물며, 만덕산의 명물 차, 차밭에서 호를 따온다. 이호는 사실 본인보다 다른 사람이 많이 사용했다.

오히려 이때 정약용은 ‘기다린다’는 뜻의 사암이라는 호를 썼다. 스스로 쓴 비석문에도 ‘사암 정약용’이라고 기록 돼 있다. 유배지에서 얻은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싶었을 수도 있다.

사실 ‘다산은 정약용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름’이라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다산이란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무안 출신의 박석무씨로, 정약용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는 ‘다산학’이란 학문을 정립했다. 단지 그의 저서 ‘다산,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책을 통해 ‘다산’을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게 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18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57세에 고향에 돌아와 18년 동안 살다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고향 마제에서의 18년 동안은 ‘열수’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열수는 한강의 다른 이름이다. 많은 호 중에서도 지형을 주로 사용했던 정약용의 기호상 ‘열수’의 사용 예상이 가능하다.

남양주시가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암’ 명칭 사용에 대해서 특별히 반론을 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당성과 논리 입증에 앞서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사전 홍보가 선행됐어야 한다고 본다.

타당성과 논리만을 앞세워 기존의 다산지명 등 명칭을 교체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수선한 논란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한다.

[신아일보] 남양주/정원영 기자

wonyoung5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