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공기관 합동채용, 경쟁완화인가 선택권박탈인가
[기자수첩] 공공기관 합동채용, 경쟁완화인가 선택권박탈인가
  • 백승룡 기자
  • 승인 2018.10.1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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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공기업 필기시험이 이달 연이어 진행된다. 'A매치'로 불리는 금융공기업 합동 필기시험이 오는 20일 예정된 데 이어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에너지공기업 합동 필기시험도 27일 치러진다. 유사한 분야별로 같은 날짜에 필기시험을 치르는 공공기관은 상·하반기 통틀어 올해 67개에 이른다.

이 같은 '합동채용'은 중복합격을 막아 경쟁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중복합격에 따른 타 응시자의 채용기회 축소와 과도한 경쟁에 의한 사회적 비용발생을 완화하고자 합동채용을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자를 분산시켜 경쟁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경쟁 완화를 목적으로 지원자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방식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공급(채용인원)은 그대로이거나 줄어가는데 수요(구직자)가 심각하게 늘어나니 수요량을 강제로 억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공급자인 정부 및 합동채용 참여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단 한명이라도 취업자가 늘어난다면 개선된 '고용지표'를 제시할 수 있고, 참여기업 입장에서는 최종합격 후 다른 기업을 선택하는 '이탈자'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요자인 취업준비생들은 합동채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정확히 말하면 '알 수 없다'가 된다. 공신력 있는 설문조사가 진행된 적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공급자 중심의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지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 상반기에 구직자 4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6%가 반대했다는 결과가 전부다. 반대 이유로는 '취업 선택의 기회 박탈'이 가장 많았다.

LG그룹의 채용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합동채용'의 의미가 좀 더 와닿는다. 그룹 공통 필기전형을 치르고, 이 결과를 기반으로 계열사별 면접전형을 이어간다. 이처럼 한 번 치른 필기시험 결과를 그룹사 내에서 복수로 활용하는 방식이 지원자들에게 보다 기회를 열어주는 '합동'으로 보인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합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채용을 진행한다면, 최소한 사기업 보다는 취업준비생에게 환영받는 상생의 방향이 나와야하지 않을까. 어디로 쓰이고 있는지 모르는 막대한 일자리 예산은 분명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하고 여기에 따르는 비용으로 활용하도록 책정된 것 아닌가. 청년 실업률이 3분기 기준 9.4%에 달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에 이르렀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취업준비생에 대한 공감이 선행됐다면 선택권을 빼앗는 방식보다는 더 나은 대안이 나왔어야 했다.

sowleic@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