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평양으로 날아가 2박3일 일정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 들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했다. 지난 4.27, 5.26 판문점 정상회담이 희망을 여는 봄철회담이라면 이번 9.18 정상회담은 봄에 뿌린 씨앗을 거두는 수확의 회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하다.
더구나 이번 남북회담은 1948년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 권력의 실질적인 심장부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시작됐다. 냉전의 기류가 한반도의 등줄기에서 떠나지 않았던 지난 시절 북한노동당 중앙청사는 무시무시한 독재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음습하고 무자비한 통치의 상징이었다.
단순히 격세지감이라고 하기 보다는 외려 충격이 더 크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이번 정상회담의 표면적인 의제는 청와대가 미리 밝힌 대로 한반도의 비핵화,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 서해평화수역 등 군사적 충돌방지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될 수가 있다. 그러나 실질적이고 다급한 현안문제는 좀 다르다. 북한의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이에 대한 확실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 북한의 관계가 교착상태에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것을 풀지 않으면 한·미·북 누구도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다는 데 있다.
파격적인 공항영접과 평양시내 카퍼레이드를 함께하며 우의를 보인 양 정상의 첫 발언은 온도가 다소 다르다. 영접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빠른 걸음으로 더 큰 성과내자, 역사적인 조미대화 상봉의 불씨를 문대통령께서 찾아 줬습니다”라고 말문을 뗀데 대해 문 대통령은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이 됐습니다”라고 회담의 결과를 기대하는 발언을 했다. 두 정상이 다 같이 통 큰 이해와 결과를 함께 만들자는 얘기였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디테일해 보였고, 첫 날 노동당청사에서의 회담은 중심의제를 개괄적으로 논의했던 듯하다. 첫 회담 이후 이어진 환영만찬에서 김 위원장은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민족화해와 평화 번영의 새 시대로 들어선 데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 한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항구적인 번영의 큰 그림을 그릴 것이며 넘지 못할 선은 없다”고 화답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회담을 준비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불필요한 억측을 부르게 하는 등 다소의 티가 보였으나 결과로 보상되기를 바랐다.
둘째 날 회담직후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그 틀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할만하다. 선언에서 핵위협 없는 한반도와 군사적대를 종식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사업을 우선 정상화하는 남북경협은 물론 남북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개소하고 도로와 철도연결의 연내 착공 등 다방면의 구체적 합의안을 내놓았다. 특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까지 거론돼 변화의 바람에 어리둥절할 정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사찰을 수용했다’거나 ‘2032년에 남북이 공동으로 올림픽 개최를 신청할 것’이라는 코멘트를 트윗에 올리며, ‘매우 흥분된다’고 밝혔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북 교착상태 해소의 물꼬는 틔운 셈이다.
70년 북한정권 수립 후 처음으로 북정권의 심장부에서 마주앉은 양 정상에게 간절히 바란다.
남북의 7500만 주민은 과욕과 탐욕이 뒤엉킨 권력자들의 정치적 수사의 성찬이나 현란한 선동적 이미지의 환상을 원하지 않는다. 브레이크 없이 막 달린다고 걱정하고 마뜩잖게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도 이 나라 국민이다. 정치권력을 셈해 탐욕을 부리거나 역사적 사명과 소명을 오해하고 독점하며 과욕을 부리면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되며 그 부담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분단대치 하는 천추의 숙제를 누군가는 앞장 서 풀어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나 국가와 국민은 영원하다. 한 때의 비난은 무릅쓰고 오로지 양심과 청사(靑史)의 기록을 두려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