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돌린다’는 고사성어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그만큼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푸근한존재다.
고향, 고향이라는 말만 나와도 깊은 감동이 마음에 느껴진다. 고향 친구, 고향 음식, 고향 역, 고향집, 고향 풍경 등 고향에 있는 것이면 아름답게만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고향은 우리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꿈이 있는 곳이며, 우리에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삶이 곧 전쟁이 되어 버린 치열한 현실에서 고향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휴식처요 삶속에 있는 안전한 평화지대인 것이다.
봄이면 가슴에 속삭이는 새싹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면 바람에 너울거리는 신록의 향기로운 내음에 취할 수가 있고, 가을이면 오곡백과가 익어가면서 황금벌판에서 내뿜는 결실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겨울에는 매서운 한파를 맞으면서도 온 동네를 뛰어 다니며 노니는 것이 바로 고향인 것이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이란 말도 있다. 사람이 의식이나 판단능력을 잃어버려도 집은 찾아 간다는 말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귀소본능이 있다. 호랑이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굴을 찾아 와서 죽는 다는 말도 있고, 비둘기는 수백 km를 가서 풀어 놓아도 자기의 집을 찾는다. 뿐만이 아니라 철새들은 수천 km를 날아서 정확히 자기가 살던 곳을 찾아간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오죽하겠는가.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24일이 추석이다. 마음은 벌써 고향땅 부모님을 만나기라도 한 듯 설레며, 이미 고향에 가 있다.
추석은 마음부터가 넉넉해진다. 천고마비의 절기에 햇곡을 거두고 온갖 햇과일이 나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전에 없이 우울한 분위기다. 상인들은 추석 대목경기가 실종됐다고 울상이며, 서민들은 생활이 갈수록 궁핍해 진다며 여기저기서 불멘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향이 그리워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먼 이국에서 오직 모국어 하나만을 잊지 않은 채 희미해져 가는 고향 추억을 더듬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추석맞이는 긴 한숨 소리뿐일 것이다. 자식 따라 이민 떠날 때 고향의 흙 한 삽을 떠갔다는 어르신들이 쳐다보는 추석 보름달은 어떠할까.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다. 다문화 시대, 낯선 땅에 이제 막 뿌리를 내려 살기 시작한 결혼이민자 또는 새터민(탈북자)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더욱 남다를 것이다.
가슴 저미는 타향살이 서러움으로 먼데 하늘을 무연히 바라보는 얼굴들이 또 있다. 고향 떠난 지 몇 년 되도록 돌아가지 못한 채 열악한 근로환경에서도 이를 악물고 사는 산업현장의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그들도 추석에 컨테이너 속에 엎드려 보고 싶은 고향 부모형제를 생각할 것이다. 이들도 우리가 어루만저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만 추석이 추석다워 질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을 멀리 떠나 있을수록 또 그 세월이 길어져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정비례하게 짙어져 가고 그 진한 향수는 삶과 늘 함께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덮어두고 한 달음에 고향으로 달려가 남아 있는 어릴 적 친구들과 소주나 막걸리를 한잔을 들이키며, 효(孝)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주의가 약화되고 1~2인 가구 중심의 소가족화와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내는 고령자 스스로 노후 준비.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인한 ‘장바구니 물가’ 비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날뛰는 공공물가 등 이런 세상 모든 시름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옛 추억에 잠기고 싶다.
아침 해살이 들판의 안개를 걷어내 듯이 이번 추석에는 모든 아쉬움과 걱정을 털어내고 보름 달 같은 환한 희망을 찾아 나서자.
/김종학 사회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