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도구나 장소 등은 구애받지 않는다, 단,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규칙만이 필요할 뿐. 아니 서로 합의만 된다면 그도 필요 없다. 또한 짜여있는 틀과 형식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만 규칙에 따라 그저 즐길 뿐.
가위바위보 게임은 단순하다. 그래서 명료하고 명쾌하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같은 큰 감동도 없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같은 뭉클함도 없다. 있다면 가끔 감정에 불을 지르며 파문을 줄 뿐.
가위는 단절, 바위는 힘, 보는 포옹력의 뜻을 부여 승패를 한번 가늠해 보자.
‘가위와 보’가 맞붙는다면 승자는 누가 될까? 당연히 승자는 가위를 낸 사람이 될 것이다.
‘가위와 보’의 대결은 사실 득보다 실이 크다.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 남는 것이 없다. 남는 것이 없는 만큼 굳이 손실을 감수하며 경쟁할 필요는 없다. 어쩔 수 없는 경쟁이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상생법을 찾아야겠다.
가족·학교·사회 더 나아가 국가라는 큰 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위는 자신을 자학하지 말고, 보는 지나친 포옹력으로 자가당착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보는 가위를 수용하되 올바른 결단 도구로만 사용하고 그 쓰임새를 분명히 해야겠다.
가위와 주먹이 만났을 땐 어떨까?
힘의 상징을 가진 주먹일까? 아니면 단절을 의미하는 가위가 될까?
물론 주먹이건 가위이건 힘과 단절 만으로는 세상을 좌지우지시키지는 못한다.
힘도 강약 조절 없이 하루살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다 그저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반딧불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무시하며 본인 뜻만을 관철시키려는 맹목적인 불통 방법들은 과감히 버려야겠다. 불을 일시적으로 붙이기는 쉽다. 그러나 유지시키기는 어렵다. 서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는 요원하다.
가위를 동시에 낸다면 어떨까? 게임에서는 무승부다.
인생에서도 무승부일까? 아니면 극한 대립으로 개인 간 또는 국가 간 분쟁의 씨앗으로 자랄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개인과 개인 또는 국가와 국가 간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 나아가야 하겠다.
신뢰에 금이 간다면, 신뢰는 일회용 반창고로 절대 붙여지지 않는다.
만약 금이 간 시기가 초기 단계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당장 중요하지 않더라고 말이다. 금이 크기가 나무 크기로 자라기 전에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과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가진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 관계가 가위가 될지 보가 될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남·북·미 모두 보를 낸 모양새다. 미국 또한 그에 발맞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 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과 관련해 “올해 어느 시점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종전선언’이 진일보한다면 남북 관계는 한층 더 훈풍을 탈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