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며 기상 관측이래 최고 기온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폭염에 가축들의 집단 폐사는 물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가히 살인적인 더위라 할만하다.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도 급증하고 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가정 등에서 에어컨 등 냉방기기의 사용이 는 때문도 있겠지만 축산농가 등에서는 더위로부터 가축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냉방기를 풀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는 땀구멍이 없어 더욱 더위에 취약하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더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산업현장 전기 사용량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철강업체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이 무색할 정도의 펄펄 끓는 용광로 옆에서 근로자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냉방기를 최대한 가동해보지만 수은주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온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산업현장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폭염에 갑자기 도로 표면이 튀어 오르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염천의 뙤약볕 아래에서 긴급 도로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 덥다고 생산을, 혹은 복구를 멈출 수 없기에 그들은 그저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다.
전기 예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지자 전력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정부가 급해졌다. 부랴부랴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원전 24기 중 지난 21일 발전을 재개한 ‘한울 4호기’를 포함해 모두 17기를 가동하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정비 중인 ‘한빛 3호기’를 8월 둘째 주에, ‘한울 2호기’는 8월 셋째 주에 다시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간 전력 수요가 피크를 이룰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력대란을 막기 위한 긴급조치인 셈이다. 또 예정된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 정비 시점도 미루기로 했다. 정부는 원전 추가 가동으로 지난 3월 53%까지 떨어졌던 원전 이용률을 8월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원전은 16기만 가동하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풀가동하던 정책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정부는 원전 가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미세먼지 배출이 많고 발전단가도 비싼 석탄과 LNG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결국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원전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지난해 6월 ‘탈핵시대’를 선언하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그동안의 정부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돼 머쓱하기만 하다. 그동안 홀대해온 원전을 이용해 전력대란을 넘겨보려는 미봉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탈원전 정책의 잘못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탈원전이라는 세계적 추세와 정책의 방향과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값싼 원전을 폐기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화석 발전과 친환경에너지인 탱양광과 풍력 발전에 의존했을 때 발생하는 전기값 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전기값 인상은 서민가계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산업계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생산원가를 상승시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게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여건이 날로 악화되는 속에서 최저임금과 전기값 인상 등 생산원가 상승 압박은 우리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탈원전만이 능사인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