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세계 최강인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28일 새벽에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피파(FIFA)랭킹 57위인 한국은 56계단이나 높은 피파랭킹 1위인 독일에게 2대 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스웨덴에 0대 1, 멕시코에 1대 2로 패하면서 사실상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특히 멕시코 전에서는 수비수 장현수 선수가 핸들링 반칙을 범해 실점으로 연결되는 뼈아픈 기록을 남겼다. 핸들링 파울로 패널티 킥 기회를 준 한국은 멕시코의 벨라 선수가 침착하게 골을 넣으면서 선제골을 빼앗긴 것. 장현수 선수는 이후 사실상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현수를 국대(국가대표)에서 영구제명 시켜달라’ ‘장현수 군 면제 취소’, ‘장현수 승부 조작 조사해 주세요’ 등 수백건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차마 글을 옮길 수 없을 정도의 도 넘은 막말도 온라인 바다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독일전에서 한국이 승리를 거머쥐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독일전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반응이 주를 잇는다. 여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극전사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멕시코 현지 반응도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멕시코는 27일 스웨덴과 결전에서 0-3으로 패했다. 한국이 독일에 졌다면 득실차에 밀려 대회 2승을 하고 16강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주민은 기아차 현지 공장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냈고 유명 식당에선 기아차 사원증을 보여주면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멕시코 국민들 역시 각종 SNS를 통해 한국인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올리는 중이다.
승패를 두고 울고 웃는 것은 우리나라나 멕시코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때로는 과도한, 때로는 가혹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성숙된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장현수 논란은 우리의 문화가 아직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 아닌가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외신에서조차 장현수 선수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할 정도다.
일각에선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할 확률이 1%도 채 안된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한국은 또 다시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는 신태용 감독의 전술 전략이 영향을 준 것도 있었지만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서 그 순간순간 정확한 판단력을 내렸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실수가 치명적이거나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축구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잘 한다고 해서 영웅으로, 실수했다고 해서 인격까지 모독하는 극과 극으로 치닫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의 역할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활약한 대표 선수들이 대거 마이크를 잡았다.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등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이들은 지상파 중계방송에서도 국가선수 못지않은 입담을 자랑했다. 이중 박지성 해설위원이 남긴 어록은 한국축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함을 남겼다.
“한국축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 여기엔 희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