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대지가 서서히 달아오른다. 트럼프 김정은 북미회담에다 6·13지방선거 열기가 더해 이른 여름인데도 삼복 열기를 방불케 한다. 너도나도 열 받은 탓인지 전 현직 대법원장의 날선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새 정권이 들어 선 이후 대법원 수장이 진보성향으로 바뀌면서 전 정권이 판사들을 성향에 따라 분류하고 관리해 왔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실체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사법부개혁의 신호탄이 올랐다.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블랙리스트란 한마디로 판사들의 정치성을 조사해 재판 참여여부를 결정하고 관리한 인명부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 조직, 회계, 정책을 담당하는 관리부서다.
그런데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재판으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려고 했다”며 법원행정처 내부문건을 공개하면서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혼돈의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문건에 관련 된 당시의 판사들이자 현재는 변호사들 30여명이 대법원 청사 앞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공동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관리된 재판에 대한 불신이 기자회견이나 시위 등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조단은 “문건 내용 대부분은 실행이 되지 않았고, 행정처가 사전에 재판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나온 재판내용을 취합해 거래를 시도하려 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요지는 행정처가 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판결과 상고법원의 설립 건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판결이 끝난 사안에 대해 특별조사단이 조사를 해 그야 말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특별 관리의 흔적이 드러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을 치자 전 현직 대법원장은 언론을 사이에 두고 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부정은 바로 잡아야 하고 적폐는 청산이 돼야 한다. 그것이 곧 퇴행이 아니라 발전적 미래로 나아가는 혁신이다. 민주주의가 어떤 제도이기에 대안이 없는 최선의 제도인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입법부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가 법을 집행하며, 사법부가 그 만듦과 집행의 당 부당과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제도이다. 법을 연결고리로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 중심에 법이 있다. 이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면 다 아는 초 상식적인 것이다.
곧 러시아 월드컵 축구대회가 시작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열심히 싸워 드디어 결승전에 나섰는데 주심 부심이 모의해 특별한 이권 거래를 해 아무 잘못이 없는 데도 룰을 무시하고 고의로 우리에게 페널티킥을 선언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까? 알고 보니 심판 단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더 높은 어떤 곳에서 아주 특별한 이권을 두고 거래를 하려 시도한 흔적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솟는 일이다.
낮은 백성은 밥과 법을 믿고 산다. 대법원 판결이 신뢰를 잃으면 국가의 법치가 무너진다. 법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이다. 하나를 보면 때로는 열을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전 현직 대한민국 민주주의 심판장 두 사람이 진실 공방을 벌이는 형국이다. 멀지 않아 명명백백 드러날 것이다.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 더구나 정치와 권력이 뒤엉긴 어떤 의도가 담긴 것이라면 논쟁은 덧없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 정치사가 잔인하리만치 밝혀내고 엄단하는 현실적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