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칼럼] '갑질'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가
[신아칼럼] '갑질'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가
  • 신아일보
  • 승인 2018.05.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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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홍 논설위원

최근에 대한항공의 물컵사건이 우리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갑질’이란 단어를 치면 ‘대한항공’, ‘미스터피자’, ‘프랜차이즈’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며 자신만이 잘난 줄 안다. 갑질에 대한 공분이 쏟아지고 있지만 갑질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갑질이 요즘 자주 회자되는 것은 평등이 과거 어느때보다도 강조된 덕분이기도하다.

필자는 갑질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인류역사상 가장 갑질로부터 자유로움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노예제도는 전세계에 널리 존속해 있었다. 

과거엔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갑을관계란 표현도 무색할만큼 철두철미한 상하 종속관계였고,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학대가 자행됐다. 아랫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 사물의 궤짝 정도로 여겨졌다. 

그것은 대한항공의 자매나, 백화점의 VIP고객이 한 행위는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혁명과 공산주의도 어찌보면 자유와 평등을 희구하는 인간의 본질을 거스르는 갑질제도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었다고 정의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은 아이 못낳는 주인의 아내 사라를 대신해 임신을 하자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결국 아들과 함께 사막으로 내쫓긴 하갈은 천사가 나타나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사막을 헤매다 죽었을 것이다. 사라와 하갈의 이야기는 아마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갑을관계에 얽힌 사례일 것이다. 

창세이래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갑을관계의 문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소유와 권력추구의 대상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향유하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 있고 권력도 누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이기에 소수의 상층부는 갑질이란 학대, 폭행에 의존해 자신의 불안정한 우월적 위치를 확실히 하려는 것이다. 

현재 갑질을 추방해야한다는 각성 운동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어떠한 제도화나 캠페인도 이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갑질사건들을 통해 세인들은 왜 이렇게 세상이 험해졌는가 탄식하지만 정작 우리가 스스로 던져봐야할 질문은 “과연 너 자신은 갑질에서 자유로운가?”일 것이다. 혹자는 갑질은 모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에 근절하기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것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 자신과 내 아들과 딸 그리고 내 가족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걸핏하면 ‘꼴파 미아(colpa mia)~’라고 입에 달고 다닌다. 즉 ‘내실수’, ‘내잘못’ 모든게 “내탓이다~”라는 뜻이다. 가수 이장희의 대표곡 “너 때문이야!”가 요즘 발표됐으면 히트는 커녕 온갖 손가락질을 당했을 것이다. 이쯤에 누군가 “나 때문이야!”를 불러줄 사람없나.

/방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