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장이 또 공석상태를 맞았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취임한지 불과 2주 만인 지난 16일 사퇴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는 다음날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앞서 최홍식 전 금감원장은 채용비리 논란에 휩싸여 취임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지율 70%에 달할 정도로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받는 문재인 대통령이 금감원장 인선을 두고 결국 패했다는 평가가 주를 잇는다.
금감원장이 이처럼 짧은 시간 내 두 번이나 교체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청와대의 인선작업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여론의 강한 저항이 원인일까. 필자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높은 지지율에도 문 대통령이 승인한 금감원장이 짧은 시일 내 교체된 것은 시민의 반대가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특히 공공기관 수장에 오른 인물은 과거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또 그의 약점은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시민이 반대하는 인물이라면 그의 약점을 하나하나 세상에 공개해 여론을 형성하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불편하지만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관심은 이제 청와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에 쏠린다. 청와대는 금융시장이 김기식 전 원장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을 것으로 본다. 자존심 상한 만큼 금융개혁을 계속 밀어붙일까. 아니면 쉼표를 찍고 개혁에 대한 속도조절에 나설까. 마찬가지로 필자는 또 한번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언제까지 금융개혁에 정책 에너지를 소비할 수는 없는 일. 굵직한 대형 이슈를 원활하게 풀고 그 이후에 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렇다면 금융개혁은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주식시장에서 ‘투자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호재라 외쳐도 투자자들이 느끼기에 불안하면 하락하고 악재라고 할지라도 기회라고 생각되면 상승한다.
금융개혁 추진 동력 역시 이러한 심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금융시장의 이전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법정최고금리 폭을 급격히 낮추는 등 규제개혁 칼을 갑작스럽게 휘두른다면 시장은 지레 겁을 먹고 반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시장은 급격한 피로도가 올 수 있고 나아가 성장을 저해하는 등의 부작용까지 나타날 수도 있다.
정부가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개혁을 할 수 있는지 세세히 따져보고 시장을 이해시키는 작업. 또 금융소비자로부터 신뢰받고 성장가능성이 높은 개혁정책이 무엇인지 등을 관과 시장이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방식이라면 거센 저항도 사그라들 것이다. 물론 소통과정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