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결국 사퇴했다. 취임한지 꼭 14일 만이다. 각종 의혹에도 버티기로 일관하던 김 전 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셀프 후원’ 위법 판결이 나자 결국 16일 저녁 스스로 물러났다. 김 전 원장을 싸고돌던 청와대도 다음날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하지만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물러났다고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비어 있는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또 어떤 인물이 임명되던 같은 논란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나다 김 전 원장의 거취 문제에 접근하는 청와대의 방식이 국민들의 기대감과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더욱 논란을 키운 부분이 없지 않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김기식 임명보다 그 이후의 청와대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김기식 전 원장의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청와대의 대응은 안일했다. 이전 최흥식 전 원장의 사퇴 과정을 이미 겪었음에도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탓에 청와대의 인사·민정 라인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를 특정인물에 대한 우려 정도로만 받아들인다면 청와대는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인사·민정 라인의 무능에 대한 우려와 지적은 줄곧 있어왔다. 임명하는 장관마다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며 출범 100일 넘겨서야 겨우 내각을 구성했다. 그것도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장관에 대해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는 밀어붙이기식 모양새를 취하고서야 겨우 첫 내각의 얼개를 짜 맞출 수 있었다. 임명을 강행 했던 일부 인사는 지금도 국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김기식 전 원장의 셀프 후원에 대해 선거관리위원가 위법이라는 유권 해석을 내리면서 또 다른 국회의원 출신 장관의 셀프 후원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 역시 이런저런 의혹이 불거지며 국회의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청와대의 밀어붙이기 덕분에 정부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단순한 의혹 제기에는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객관적 사실이나 합리적 의심마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눈 가리고 귀 막아서는 이전 정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열린 마음으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의 파트너다. 건건이 무시하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다. 수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국민의 대표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국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더군다나 인사권을 행사해놓고 해임 여부의 판단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도 좋지 않다. 선관위가 인사권자도 아닐뿐더러 거센 비난 여론을 피하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원인을 제공했으면 해법까지 제시 하는 것이 권력자로서의 당당한 자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내세우는 만큼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국민과 싸우려한 어느 나라의 정권도 그 끝이 좋지 못했다. 초심을 잃는다면 분명 좌초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더욱 엄격한 잣대로 차기 금융감독원장 인사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