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삼성증권 등 5개 증권사를 초대형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으로 지정했다.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IB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받아 대출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자를 상대로 증권의 발행을 통해 기업자금을 공급하는 금융회사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간 국내 증권사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IB업무를 수행해 왔으나, IB의 핵심인 기업금융 업무에 있어서는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상황에서 IB의 역할확대가 가장 절실한 부분은 모험자본의 공급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는 IB가 성장 초중반기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의 확대에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더불어 물리적 자본축적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경제는 저성장이 고착화돼 가는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저성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이 중요하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큰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창업과 기업성장이 활발해져야 한다. 그런데 신생기업이나 성장기의 기업은 미래의 성장잠재력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사업과 관련된 위험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감수하면서 자본시장을 활용해 이들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확대하고 기업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초대형 IB에 부여된 국가경제적 사명일 것이다.
초대형 IB에 부여된 경제적 역할을 감안한다면 기업금융 기능강화를 위해 자기자본의 200% 한도 내에서 자기어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조달한 자금의 50% 이상을 기업금융 업무에 활용하도록 제한한 부분은 적절한 조치일 것이다. 초대형 IB가 기업금융 업무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자금원을 마련해 줄 필요성이 있으며, 조달된 자금이 실제로 기업에 유입될 수 있도록 일정수준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실효성을 확보하게 된다. 초대형 IB의 기업금융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은 관련 업무에 대한 인가를 계획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초대형 IB의 입장에서는 발행어음 업무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모험자본 영역에서의 기업금융은 태생적으로 장기투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자금의 운용만기가 조달만기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초대형 IB가 조달된 자금으로 단기수익을 과도하게 추구할 경우 만기불일치로 인한 위험이 커진다는 점을 인식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금융 기능강화에 있어 핵심적인 사항은 기업분석과 이에 따른 가격판단이다.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얼마만큼의 성장성과 이익창출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며, 평가에 따라 자금공급에 대한 가격이 결정된다.
기업 및 가격에 관한 신뢰성 있는 정보의 생산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전문성은 단기간에 축적되기 어렵다. 단기적인 성과를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초대형 IB가 우리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임을 감안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인적자본의 확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IB의 동반자적인 발전을 위해 모든 시장참가자들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