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회생 불가능한 기업엔 추가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천명했다.
20조원을 쏟아 붓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이제 제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 눈여겨 볼 일이다.
정부는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고 STX조선은 자력 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고강도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지난 두 달간 전문 컨설팅 회사를 통해 산업 생태적 측면, 회사부문별 경쟁력, 구조조정 및 사업재편 방안 등을 포함해 다양하고 밀도 있는 분석을 했다. 사측, 노조,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과정도 거쳤다.
그 결과 채권단은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고, STX조선은 자력 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고강도 자구노력과 사업재편에 대해 한 달 내에 노사 확약이 없는 경우 원칙대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채권단은 성동조선의 경우 자금지원을 하더라도 회수 가능성이 없어 부실 규모만 확대할 것으로 판단했다.
STX조선도 컨설팅 결과는 부정적이었지만 한 차례 법정관리를 거치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부채비율 76.0%로 재무건전성이 개선됐다. STX조선이 건조 경험이 있는 소형 액화천연가스의 시황 전망이 상대적으로 좋아 앞으로 물량 확보 가능성도 성동조선에 비해 낫다는 평가다.
하지만 채권단은 STX조선에 고강도 자구계획과 사업재편에 대한 노사확약서를 다음달 9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은 STX조선에 컨설팅에서 제안한 인력 40% 감축안 보다 높은 자구계획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만족할만한 자구계획이 나오지 않거나 노사확약서가 제출되지 않는다면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나선 것에는 환영한다. 다만 구조조정을 제대로 끌고 나갈만한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이 걱정이다.
과거 구조조정에서는 경험 미숙으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중소 조선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은 재무적, 산업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정부 내에 그런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다.
과거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지 못해 글로벌 해운 네트워크를 날려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자면 ‘무조건 살리자’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엄청난 오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성동조선과 달리 STX조선에 기회를 준 것은 단지 1475억원 규모의 가용자금으로 당장 신규자금 지원이 필요치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동시에 정리하면 협력업체의 경영 위기가 가중되고 중형 탱커 선을 수주할 조선소가 없게 되는 등 조선 산업 전반의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산업적 측면도 고려됐다.
‘고름은 살이 안 된다.’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고 새로운 살이 돋아야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산업 구조조정은 섞어 문드러져 다시 살이 될 수 없는 상처를 도려내는 작업이다. 당장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다른 산업으로 전이되지 않게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
현재 공공기관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의 영향으로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부를 도려내야 할 칼은 빠르고 정확해야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