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부터 개헌 문제를 다룰 국회 개헌특위가 가동됐다. 하지만 우려대로 개헌특위는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여야는 첫 만남부터 개헌에 대한 커다란 입장과 시각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앞으로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했다. 개헌의 시기와 폭 등 어느 하나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정부와 민주당의 계획대로 6월13일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려면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반면 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개헌시계’를 연말까지 다소 느긋하게 잡고 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인 셈이다.
이런 입장 차이는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극명해진다. 가장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을 놓고는 여당 내에서도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같은 날 열린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은 그 의미가 매우 축소될 수 있다”며 “이 부분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과거 불행한 헌정사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한다”고 덧붙여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청와대와는 다른 입장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 구조 개편 부분은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기본권과 지방 분권 등에 대한 개헌만이라도 추진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된 개헌정국이 다시 여의도 정계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나 개헌은 정국의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는 ‘블랙홀’로 인식돼 왔다. 정계개편으로 인한 국회의원들의 의석수 등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권력의 안정기에는 개헌을 입에 올리는 것은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로 여겨졌다. 반대로 레임덕이 나타나는 권력 후반기나 권력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사건이 있을 때면 등장하는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국타계를 모색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일 뿐 이미 누수를 보이고 있는 권력이 개헌의 동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인 대통령에게 자신을 배출한 정당의 의원들조차 힘을 보태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회의원들이 가장 예민한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렸으니 더 말한 나위가 없다.
수많은 개헌 논의가 이렇다 할 결과물을 얻지 못한 이유다.
오죽하면 광화문 촛불시위로 국민 앞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헌을 입에 올렸을까. 그만큼 개헌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핫 이슈이다.
하지만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우리 헌정사가 겪어온 뼈아픈 실패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아야 한다.
정치권은 개헌이 국민의 요구임을 인식해야 한다. 개헌 논의 출발점도 국민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을 낳은 ‘적폐’로 지적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번 개헌을 통해 보완되기를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헌법이 특정 정당이나 계층, 세력의 이해에 이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