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북한체제의 딜레마
[신아세평] 북한체제의 딜레마
  • 신아일보
  • 승인 2018.01.1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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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원

“북한도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게 될 것이다.” 구소련 해체와 중국 변화 이후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렇게 예측했다. 정치 민주화까지 단행한 소련식 개혁이 어렵다면 교조적 사회주의 이념과 결별하면서 시장경제 실험을 모색한 중국 모델 정도는 받아들일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북한은 딴 데로 갔다. 주체사상의 완전무결성에 매달려 부분 개방과 독자적 사회주의 건설을 더 높이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북한식 부분 개방정책은 지도층의 기대처럼 '신선한 공기는 들여보내고 날벌레를 막아주는' 모기장 구실을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울 듯하다. 북한이 황폐한 주민 생활을 개선하고자 대문을 조금 열든 활짝 열든 위기가 닥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략 난감한 사정은 이렇다. 북한은 부분 개방을 가속화할수록 주민의 정체성 혼란이 불가피한 딜레마 결집체이다. 부분적으로라도 시장시스템이 도입되고 개인주의나 물질주의가 확산되면 기존 사회주의 이념과 심각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모순 덩어리 사회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 자본 유입을 겨냥해 특정 지역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해봤자 그곳이 살아날 경우 온갖 정보가 생겨나고 주민 태도가 서서히 달라진다. 이러한 흐름은 북한 전역에 걸쳐 사상요새를 구축하려던 지배층의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결국 어떤 형태든 개혁개방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 물질과 이념을 두고 갈등하는 이른바 정체성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체제 정당성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배층은 늘 사회주의 경제를 확고하게 발전시키고 주민 물질생활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모든 주민이 의식주 걱정 모르고 일생동안 끊임없이 배우면서 무병장수 누리는 나라 만들기를 일종의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실정은 이와 거리가 멀다. 제한적 개방정책을 펼쳐도 주민 생활은 쪼들리고, 그것은 다시 당․수령․인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평등이념 유지에 부담을 준다.

그런데 북한이 아무리 개혁개방을 통해 물질수준을 개선하려 해도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상 해방이 불가능한 게 걸림돌이다. 거대 인민을 마오쩌둥식 교조주의와 개인숭배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풀어주면서 천지개벽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던 중국에 비해 김일성주의 주체사상을 권력 기반으로 삼는 북한은 감히 따라할 엄두를 못 낸다.

주체사상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곧 권력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상해방이 가로막다 보니 개방에 필요한 제도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형국인 셈이다.

한편 북한 지도층은 제한적 개방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 대중의 불만에 대해 잘 안다고 봐야 한다. 흔히 북한 쪽에서 이러한 내부 골칫거리를 잠재우고 주민을 동원하기 위해 선호하는 방안이 대외적 긴장관계 조성이다. 이른바 경제사회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벌이는 미사일 게임도 그런 전략의 일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경우 필연적인 결과는 체제 안보의 위기이다. 특히 상대방 선택에 따라서는 북한 전략의 정치적 비용이 엄청나게 치솟을 수 있다. 여기에다 정치적 해결 시도가 내부 모순 폭발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체제 위기는 더 심각해진다. 지금 온 세계가 중층적인 북한체제 딜레마의 글로벌화에 시달리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갑갑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