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초기에 내세운 경제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이었다. 최근에는 혁신성장을 이야기한다. 단어만 놓고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은 서로 다른 철학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철학의 정책을 하나로 조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서로 상충하기만 한다면 큰 일이다.
우선 소득주도 성장은 수요측면을 강조한다. 서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독점했던 이익을 자영업자나 중소·중견기업에서도 나눌 수 있는 정책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 흐름과 달리하는 법인세 인상 논쟁이 주요 사례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지만 국내에서는 법인세 인상을 검토한다. 서민의 소득 증대에 경제정책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혁신성장은 공급측면에서 접근한다. 당연히 주체가 기업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책의 기본 방침은 기업의 경제자유를 높이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달리 규제 철폐가 주요한 정책수단이다.
문재인 정부가 줄곧 강조하는 또 다른 말은 ‘사람중심 경제’다. 이 말 속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정책은 사람중심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섞여 있다. 하지만 대기업 중심의 경제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제조업과 수출주도의 산업이 대기업으로 이익편중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 대기업의 발전이 사람중심의 경제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혁신성장이 국가정책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 기업은 스스로 혁신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더 이상 각박한 산업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 혁신은 생존전략이자 기업 경쟁력을 갖추는 활동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마치 경제성장 정책의 양쪽 날개처럼 이야기한다. 그 두 가지 정책의 본질은 ‘규제 강화’와 ‘규제 철폐’로 서로 상반된 개념이라는 것을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면서도 내년에 17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아직 민간에서는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는 구체적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의 여야 합의과정에서도 가장 진통을 겪은 것이 공공부문 일자리였다. 공공일자리 증원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세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경제적 측면보다 복지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창조경제’를 되뇌어본다면 이해가 쉽다. 당시 새누리당은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도 정부의 시장개입을 더 강화했다.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경제 정책을 말로만 떠들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더 두텁게 됐고 기업의 자율은 억압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창조와 혁신은 규제 강화나 시장 개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억압된 규제를 풀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