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선 출마' 첫 시사, 대선 앞 요동치는 정치권
반기문 '대선 출마' 첫 시사, 대선 앞 요동치는 정치권
  • 이재포 기자
  • 승인 2016.05.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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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민으로서 역할 고민… 국가통합 위한 지도자 나와야"
여야, 뚜렷한 찬반 분위기… 퇴임 후 대권 적정성 논란도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포럼 행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한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시사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여권은 반기문 총장의 발언을 환영하는 반면, 야권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등 기대와 관망 속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25일 제주 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가진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1월 1일이면 한국사람이 된다"면서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임기종료 후)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외신에 한국이 분열하는 모습이 나오면 창피하다고 한국 정치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총장은 "국가통합은 정치지도자들의 뜻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며 "국가통합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심을 버리고 자기자신 버려야한다. 세계가 막 돌아가는데 지역구가 뭐가 중요하냐"고 덧붙였다.

그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대망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은 "대통령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자생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인생을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부심을 느끼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권 도전설과 관련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반기문 총장의 과거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으로 어찌 보면 파격적일 정도다.

반기문 총장은 내년이면 1944년생으로 내년이면 74세가 되는 자신의 나이를 의식한 듯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은 70세, 76세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아파서 결석한 적 없다", "체력은 문제가 안된다"며 '고령 출마' 우려를 적극 불식시키려는 노력까지 했다.

다자외교 무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자주 만나 '친박'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너무 확대 해석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건 제가 보기에도 기가 막히다"고 부인했다.

그는 "대통령을 자주 만난다고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랬고 어느 대통령이건 다 했다(만났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반 총장은 대북 압박과 함께 인도적 문제를 통해 물꼬를 터가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현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힌다.

▲ 25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초청 관훈포럼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이런 반기문 총장의 '깜짝 발언'에 정치권에서는 그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대망론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며 즉각적인 반응들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반기문 총장이 우회적으로나마 차기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데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같은 충청 출신이면서 관훈포럼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나라가 어려울 때 충청 출신들이 먼저 떨치고 일어난 사례가 많지 않냐"며 "지금은 나라가 어렵다"고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관훈포럼에 참석한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도 "반 총장의 경험과 능력을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쓰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다만 친박(친박근혜)계가 "100년 안에 한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또 나오겠느냐"며 반 총장을 대체 불가한 인재로 치켜세우고 있는 반면, 비박(비박근혜)계는 "검증 과정을 잘 견딜 수 있는지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계파 간 온도차를 드러냈다.

반기문 총장은 당적이 없어 아직은 여야 3당 어디로도 출마가 가능하다. 하지만 두 야당은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확고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반 총장이 이를 뛰어넘긴 힘들다. 따라서 친박계가 구애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의 경계심은 뚜렷했다. 일부 회의적인 전망이 나왔지만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가 뚜렷했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대권 잠룡'을 보유한 더민주는 반 총장을 견제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4선 고지에 오른 송영길(인천 계양을)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25일 "반 총장이 대통령선거에 나오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반 총장 개인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를 총괄하던 유엔 사무총장이 특정 국가의 대통령을 목적으로 사무총장을 활용하면 누가 그를 공정한 사무총장으로 보겠느냐"고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반기문 총장이 임기 말까지 국내에 '친반기문'으로 분류되는 인사 등을 소통 창구로 삼아 국내 정치권과 물밑 접촉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편에서는 반기문 총장의 퇴임 후 대선 출마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유엔 결의안 위반'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5일 오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자존심이 있기에 유엔 결의문 정신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그는 "사무총장으로서 여러 국가의 비밀 정보를 많이 알게 되는데 특정 국가 공직자가 되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 직책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의문이지 않겠나. 존중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1946년 채택된 유엔 총회 결의안 중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의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에 퇴임 직후에는 회원국의 어떤 정부 직위도 맡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있다. 우선 유엔 총회 결의안은 권고적 성격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국제 정치적으로나 관례상 문제가 될지는 논란이 있다. 총회 결의가 채택됐으면 회원국으로서 결의를 이행해야 하는 정치적 의무를 지게 된다.

'직후'라는 표현의 해석에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총장은 올 12월 31일에 임기가 끝나고 대통령 선거는 내년 12월에 있다.
 

[신아일보] 이재포 기자 jp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