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실, 구한말 패망 직전과 흡사”
“한국 현실, 구한말 패망 직전과 흡사”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3.12.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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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내부 분열·갈등으로 미래 비전 논의 없어”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이 1900년대 대한제국이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거의 동형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아일보=고아라 기자] 송호근(57, 사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등 현재 돌아가는 판세가 100여 년 전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살길을 모색하려면 국력을 결집해내야 함에도 현재 한국 사회는 구한말(舊韓末) 때처럼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내부의 분열과 갈등 속에 허우적대며 기운을 탕진하고 있다고 송 교수는 우울해했다.

‘인민의 탄생’(민음사 펴냄) 출간 2년 만에 같은 출판사에서 ‘시민의 탄생’을 낸 송 교수는 “사실 오늘날 보면 그때보다 외부적인 상황은 더 나빠졌다”면서 “주변 외세의 4강 구도는 변하지 않았고 여기에 통제 불능의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생겼기 때문에 훨씬 더 악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내부적으로도 성리학적 질서에 얽매여 국제질서 변화에 둔감했던 구한말 때처럼 현재 한국도 20세기 성공 신화에 안주한 채 미래 담론이 실종됐다”면서 “20세기 성공의 끝 자락에 와있음에도 20∼30년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의 논의는 전혀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우리가 그동안 큰 사건을 많이 겪어서 위기에 대해 일종의 면역이 돼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은 100여 년 전 국가가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에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는 송 교수의 발언은 현실 비판으로 이어졌다.

“결국,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종북(從北) 발언 문제도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더구나 민주화도 25년이 지난 상태라면 종북이라는 것을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 발언이 나오는지 조금은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죠. 양쪽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해가 될만한 말이나 험한 말은 자제하는 게 맞습니다. 다들 자해하는 수준까지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보다는 20∼30년 뒤의 한국의 비전을 놓고 얘기하면 현재 자기 입장을 자제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끝장을 보고 싶어하는 이런 태도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죠.”

송 교수는 선진국에서 흔히 목격하는 양보와 타협의 성숙한 자질, 시민 윤리라고 부르는 그런 습속이 한국 사회에는 결핍됐다고 답답해했다.

송 교수는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머리만 비대해졌지 내부 정신은 비어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이라고 짚었다.

송 교수는 “다만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장점만을 취하는 후발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진단만 올바르게 내린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결핍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힌 이 책이 한국 내 갈등구조를 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속 과제로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 20세기 국가와 시민 사회’를 펴낼 예정이다.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과 더불어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송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림대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로 재임했고, 199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조교수로 임용돼 학과장과 사회발전연구소장,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복지국가의 태동: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