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의칼럼] 값진 금배지와 빛바랜 금배지
[오세열의칼럼] 값진 금배지와 빛바랜 금배지
  • 신아일보
  • 승인 2008.04.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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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 열 주필
“정치권은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국민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는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18대 국회의원 299명이 탄생했다 이들은 5월30일 임기를 시작해 4년간 의회정치와 입법의 주역으로 나라살림의 조정자로 활동한다.
이들에게는 국회 본회의장 벽면의 휘장을 축소한 ‘금(金)배지’가주어진다. 이 ‘금배지’의 실제 가격은 1만5950-2만2000원. 순은에 도금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무형의 가치는 의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공무원의 최정점에 있는 장관과 비슷하다.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잘해도 못해도’ 4년을 보장 받는다. 연봉은 장관과 비슷한 1억 2000만원 정도다. 또 후원금으로 한해 1억5000만원쯤 들어온다.
의원들은 지역구 활동으로 쓸 돈이 많이 남은 게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면 각종 정책이나 개발 투자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지난해 우리국회의원의 부동산은 1인 평균 1억9000원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 되었다. 또 4·5·6급 보좌관과 비서관 운전기사등 7명까지 거느릴 수 있고 한 해 두 차례 해외 시찰에 차량유지비, 전화요금, 사무실 등 경비가 지원된다. 의원 한 사람에 한해 22억원 4년을 계산해보면 2조 6000억원 정도가 국회의원 인건비등으로 세금에서 지출된다.
국회의원들은 무엇이 국익이고 파쟁이며 무엇이 당리당략이고 공익이며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이며 무엇이 도리이고 염치인지를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우리 국회의 추한 작태가 비단 오늘만의 얘기겠는가마는 허구헌 날 난장판이다.
그런데도 국회로 향해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불나방처럼 날아든다.
장관을 했던 자도 별을 줄줄이 달았던 자도 교수 총장도 의사 변호사도 모두 줄지어 달려간다. 그곳이 난장판이면 욕먹는 곳이라면 명예도 아니요 나라에 충성도 아닐 터인데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유인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은 특권이 있다는 생각 외에는 없다.
그 특권 몇 개만 들어보자. 국민들이 뒤에서는 욕하지만 앞에서는 떠받으니 그 맛이 그만이다. 어차피 뒤에는 눈이 없다. 면책 특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별소리 다해도 교도소에 갈 염려가 없다. 청문회 나온 증인이나 참고인들에게 호통을 쳐도 된다. 모든 조직이 구조조정을 하지만 자기들은 보좌관 수를 늘려도 된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지키지도 않는다. 출마 할 때는 엎드려 절하다가도 당선만 되면 목에 힘을 주고 다녀도 된다. 주인을 깔아 뭉개고 머슴이 주인 노릇해도 탈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입법 의무를 팽개치고 당리당략에 어긋나면 난장판을 벌이다가도 뒤돌아서서는 웃어도 된다.참으로 뱃심 좋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알기를 무엇으로 알고 그런 처신들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안하무인에 오만이다.
정쟁으로 지새는 국회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민심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밀어 붙어서는 곤란하다. 오만과 독선은 금물이다. 그것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야당과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취할 것은 취해야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선전하지 못했다. 합리적 대안과 실용적인 접근으로 가능성을 모색해야한다. 떼쓰기 정치로는 활로를 찾은 수 없다. 국민이 가리키는 방향을 이념이 아닌 실용과거가 아닌 미래이다. 그 동안 숱하게 봐온 소모적인 정쟁에 신물을 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를 가져야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18대 총선을 계기로 우리국회가 새 출발을 해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백성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18대 총선 투표율이 46%대로 역대최저를 기록했다. 어느 것도 표심에서 멀어진 유권자의 발길을 돌려놓지 못했다. 참여없는 자유민주주의는 모래 탑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총선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의 민주주의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정치권은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국민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없음을 깨달아야한다. 국회의원을 일반 사회의 논리로 보면 기업의 종업원이나 농가의 머슴일 뿐이다. 그들이 놀이나 하고 어쩌다 생각나면 씨나 뿌렸다가 쭉정이 수확이나 하면 주인의 상전 노릇까지 하고 있는데도 파직(罷職)하거나 두고만 본다면 그 농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국가라도 마찬가지다.
18대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은 의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이어 법률적 관행적 예우와 정치적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그 배지의 주인에 따라 그 값어치는 천양지차다. 지금이야 말로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외치던 국민을 위한다면 ‘빛바랜 금배지’가 아닌 ‘값진 금배지’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