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를 아시나요
‘영남 알프스’를 아시나요
  • 신아일보
  • 승인 2008.04.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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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장
“한반도의 등뼈인 태백산맥이 남쪽을 향해 힘차게 내려뻗다가 마지막 용틀임을 하며 솟구친 곳, 이름하여 영남 알프스이다"

최고봉인1240m의 가지산을 위시하여 운문산(1188m), 재약산, 영취산(1092m), 신불산(209m), 간월산(1083m), 고헌산 등 해발 1000m이상의 山群을 지칭하는데, 이름 그대로 알프스에 버금갈 정도의 빼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다. 비단 풍광만이 아니라 산자락이 돌아가는 곳곳에는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명찰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고, 사자봉 아래로는 125만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억새평원인 사자평이, 굽이굽이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沼(소)가 자태를 뽐내고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듣자하니 경남도와 밀양시가 민자를 유치해 이 영남 알프스 일대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구상중인 사업계획에 의하면 주봉인 가지산에서 재약산 사자봉까지의 5.7km구간에 풍력발전기 22기를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언양변전소까지 보내기위해 따로 송전철탑 수십기를 세운다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불을 훌쩍 뛰어넘어 연일 사상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마당이고,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친환경에너지를 개발·보급하고자 하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은 가려서 해야하고 순리를 따라야 하는 법이다. 낙동 정맥의 기가 올올이 뭉쳐있는 산자락마다 풍력발전기가 우뚝 우뚝 서고 능선과 계곡을 따라 송전철탑이 줄지어 들어선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것으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윽한 정취는 사라지고 영남 알프스란 이름도 무색해지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영남 알프스가 갖고있는 유·무형의 가치와 풍력발전을 통해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을 형량해볼 때 得보다 失이 클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이참에 금정산 송전철탑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금정산은 부산과 양산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주봉인 고당봉이 해발 801m에 불과하지만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화강암의 풍화로 인해 형성된 기암절벽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산정에 3丈(1丈은 10자)정도의 돌이 있고 여기에 깊이 7치(寸)의 샘이 있는데 가뭄에도 늘 물이 차있으며 금빛이 났다 한다. 이곳에 금빛 물고기가 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에서 金井山(금정산)과 梵魚寺(범어사)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어쨌거나 장구한 풍상을 부산과 함께 해오면서 시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부산의 진산이다. 그런데 낙동강변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서 이 산의 서쪽 사면을 바라보노라면 산자락이 온통 송전철탑으로 뒤덮여있다. 철탑 이외의 마땅한 송전 수단이 없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렇더라도 이 유서 깊은 산의 등성이마다 동서남북으로 철탑이 마구 얼키고 설켜 있는 모양새는 흉물스럽기가 그지없다. 지나치면서 올려다볼 때마다. 금정산의 신음이 들려오는 듯하여 마음이 울적해진다. 산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일 때가 가장 산답다. 어쩔 수 없이 인위적으로 구조물을 설치하더라도 최소한의 범위에 그치는 것이 도리이다. 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서울이 경관 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평가받는 것은 운치 있는 한강과 더불어 도시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준봉들이 온전히 거기에 서있기 때문이다.
영남 알프스도 지금의 모습을 잃는다면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도 멀어지게 되리라. 울주와 밀양을 갈라놓고 있던 가지산 밑으로 國道상의 터널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가지산터널이 새로 뚫려 올 봄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남알프스를 찾아 즐길수 있게 되었다.
부디 그들이 명산의 정취에 취하고 영봉의 기를 흠뻑 받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꽃향기 가득한 春山의 정경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