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위상에 걸맞은 한민족의 얼 지켜야
세계 속 위상에 걸맞은 한민족의 얼 지켜야
  • 정 종 암
  • 승인 2013.05.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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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열풍과 우리 경제력의 위상으로 세계에서 한글 읽기와 조상의 뿌리 찾기를 본다. 한글이 세계의 언어 중 13위를 접하는데도 못난 지식꾼들이 외래어를 지껄이는 작태가 메스껍다. 남북한과 해외동포를 포함한 한민족이 이 지구상에 약 8300만명이다. 1997년부터 한국어시험이 세계에서 주기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그 시험이 있는 날에는 경찰에 비상경계령이 발동되고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펙을 쌓는다고 영어공부에 몰두하듯이 약 51만개인 우리말 단어를 익힌다. 모국어에 등한시하던 해외동포들까지 과세한다.
한글 배움에 예외가 없는 중국에서는 우리 고유의 성씨인 박(朴)씨가 약 400여년이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랴오닝(遙寧)성 번시(本溪)현에서 우리의 뿌리를 지키고 있는 번시(本溪) 박씨. 선양을 주요 도시를 하고 있는 이 성(省)은 남한 인구와 맞먹는다. 압록강을 국경으로 접하고 있는 이곳은 누루하치가 청(靑)을 건국한 땅이다. 명(明)이 후금(後金)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이를 격퇴하기 위해 조선의 선조에게 출병을 요청했었다. 이에 강홍립을 선봉장으로 명과 연합전선을 폈으나 현재의 랴오닝성 푸순(撫順)인 부차(富車)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된 그 부하장수였던 박씨가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지 못한 애환의 땅이다.
그 후손들이 번시박씨의 혼을 살리고 있다. 16대에 걸친 약2만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청의 강희제는 1659년 박영강(朴英强) 5형제에게 토지를 분배하기도 했다. 이들은 만주족이 됐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자 한족(漢族)으로 편입됐다. 이러했던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문헌 등을 토대로 조선족임을 선포하듯이 집단민원을 제기한 끝에 중국 속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이 러시아, 하와이 등지에 이주한 이래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 독립국가연합, 캐나다, 호주 등지에 많이 이주해 있다. 세계 각국에 흩어진 해외동포들이 약 800만명에 육박한다. 세계화된 각국에서도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기는 하다. 귀화 외국인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 경제에 대해 크게 기여하고 있는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했던 우리 민족도 귀화한 외국인들이 새로운 성씨까지 만들고 있다. 이들 또한 후세에게 귀화한 조상이 된다. 외국인 수도 인구 대비 2%대다. 2050년이면 10%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거리를 활보하면 각국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계인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이들은 한국어 몇 마디로 심심찮게 건네 오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8만여명은 근간 잠시 폐쇄되는 우여곡절을 안기도 했지만, 한글을 거부 없이 수용하며 그곳 초등학교명을 ‘코리아바루 초등학교’로 개칭했을 정도이다. 사실상 한반도에는 고아시아어의 일종인 원시 한국어가 있었다는 견해와 퉁구스의 일종이라는 견해가 엇갈리는데도, 이들은 수백 년간 자신들의 고유어를 한글로 쓴다.
그러나 일부 국민들은 이들에게 거만해진 태도를 보일 때도 있다. 우리가 이러한 위상을 견지할 때까지는 가난하고 한국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에 그들에게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산야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을지언정, 혼자만의 삶은 어렵다.
지구촌의 일원으로 그들 나라에 대한 빚 갚음과 함께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외국인 유입으로 정체성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보다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전제하에 이들에 대한 지원으로 다민족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