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사(醫師)가 아쉽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사(醫師)가 아쉽다
  • 김 강 정
  • 승인 2013.03.1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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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갑자기 왼팔 전체가 저리고 손가락 끝 감각이 무디어졌다.

마침 발목 골절로 정형외과를 다니던 때라 X-ray 검사를 받아보았다.

의사는 목디스크 증세라고 진단했다.

상태가 심한 것 같지는 않으니 우선 목체조를 하라며 그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말대로 목체조를 열심히 했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끝 부분만 저림 증세가 조금 남았을 뿐 운동하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을 만큼 호전됐다.

3년 전 바로 이맘때 서울 강남구에 있는 척추디스크 전문 K병원에 갔다.

오랫동안 퇴행성 척주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 아내 때문이었다.

이 병원은 K 원장이 “척추수술의 세계적인 명의”라고 자랑한다.

K 원장은 개업 전, 모 대학병원 재직 때 척추디스크 수술의 권위자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나도 아직 손가락 저림 증세가 있던 터라 아내와 함께 MRI와 X-ray 검진을 받았다.

K원장은 아내가 그동안 퇴행성디스크 때문에 여러 병원을 다녔다는 설명을 하자 역시 같은 진단을 내리면서 주사 치료를 권했다.

한 방이면 1년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무려 195만 원짜리였다.

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이란다.

너무 비싸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목디스크라고 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순간 두 번째로 깜짝 놀랐다.

덜컥 겁도 났다.

왠지 믿기지도 않았다.

당장 큰 불편이나 통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겠다고 얼버무리고 나왔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목체조만으로 잘 버티고 있다.

아내는 너무 비싼 비용에 망설였지만 결국 당장 통증이 큰 탓에 내키지 않음에도 K 원장의 주문대로 주사를 맞았다.

어이없게도 그 효과는 석 달도 안돼 사라졌다.

속았고, 헛돈 썼다는 느낌에 분노가 치밀었다.

고발하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작년 5월 종합병원에서 정기검진 때 MRI 등 목디스크에 대한 정밀 검사도 받았다.

담당 의사는 불편하면 우선 간단한 주사요법으로 다스리며 경과를 보자고 했다.

수술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주사도 나중에 필요할 때 맞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이달 초 척추디스크 수술의 15%가 의사들의 과잉수술이었다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전국적으로 15만3661건의 척추수술이 시행됐는데 이 가운데 15.2%인 2만3385건이 과잉수술로 판정돼 해당 병원들이 청구한 진료비 292억 원을 삭감했다는 내용이었다.

또 디스크로 판명되면 먼저 6~12주 동안 물리치료와 약물투여를 하고, 효과가 없을 때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험이 적용되는 저가의 주사치료가 있다는 사실도 소개됐다.

결국 일부 악덕 의사들이 더 많은 돈을 챙기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될 수술까지 했거나, 규정보다 많은 진료비를 청구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었다.

그야말로 면허 받은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몇년 전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던 K병원의 K 원장이 한없이 추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떠올랐다.

그가 강력히 수술을 권한 이유도 알만 했다.

또, 아내가 퇴행성디스크 증세로 여러 유명 병원을 다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K 원장은 아내에게도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강요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모임에서 이 사연을 털어놓자, 너도나도 비슷한 경험담들을 쏟아냈다.

용기 있는 의사들은 “척추디스크는 80% 이상이 자연 치유가 되는 병”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이런 ‘양심의 목소리’가 그나마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이는 의료계에 대한 신뢰 회복의 불씨로 승화시켜야 할 소중한 외침이기도 하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

‘언제 어느 병원, 어느 의사를 찾더라도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참 좋겠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