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경쟁
‘바벨탑’ 경쟁
  • 신아일보
  • 승인 2007.11.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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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過猶不及. 세상사에는 순리라는 게 있고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도심에 우뚝 솟아올라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고 있는 초고층빌딩. 마침내 공사를 끝내고 준공테이프를 끊는 날, 각계 각층의 내노라 하는 유명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어 축하인사를 건네느라 부산하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각, 규격미달제품으로 시공된 電線이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부터 타기 시작하면서 위풍당당했던 건물은 삽시간에 大火魔로 뒤덮혔다. 이어지는 아비규환의 절규와 탈출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오래전에 보았던 스티브 매퀸 주연의 영화 ‘타워링’의 한 장면이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지만, 초고층빌딩이 안고 있는 위험요소도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최근 들어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초고층빌딩 건축이 가히 붐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다.
한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고층건물의 대명사로 여겨진 적이 있었지만 이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가 되어버렸고, 근래 들어와서는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와 대만의 ‘타이뻬이 101’이 500m언저리의 높이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것도 한때일 뿐. 삼성건설이 수주하여 시공 중인 ‘버즈 두바이’ 건물이 2009년에 완공되면 단숨에 세계최고층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160층 규모에 높이는 무려 830m.국내에서도 초고층의 호텔, 오피스빌딩, 아파트 건축계획이 줄을 잇고 있다. 현재 설계 또는 시공 중인 것만 해도 부산 제2롯데월드와 부산월드비즈니스센터, 인천타워 등이 있고, 서울시내에도 5개 정도의 신규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고 있다.
70~80층 규모의 마천루급아파트 건축계획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젠 100층 내외에 높이 500m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마치 광풍과도 같은 작금의 고층화 바람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보자.
도시가 점점 고밀화 되면서 토지이용의 효율성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원천적으로 가용토지가 부족하고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 같은 고밀도국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날로 늘어나는 수요를 마냥 도시의 외연을 넓혀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히 고층화로 눈길이 돌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도시주변의 무질서한 스프롤화를 방지하는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 ‘스마트 개발’의 개념도 도심개조를 통해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과 삶의 질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발상이다.
초고층빌딩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활용되어 도시브랜드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쉽게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인 면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너나없이 초고층화로 치닫는 오늘의 현실은 어쩐지 위태롭고 무모해 보이는지라 못내 걱정스럽다.
過猶不及. 세상사에는 순리라는 게 있고,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도시공간이 갖는 제약을 감안할 때 고층화가 불가피한 추세라 할지라도, 건전한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임이 분명하다.
地氣로부터 멀어져서 좋을 건 없다.
또 초고층빌딩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랜드마크로 삼을 수 있는 아이템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성경이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경계하고자 했는지,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과도한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될지 진중하게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