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백두산’
민족의 영산 ‘백두산’
  • 신아일보
  • 승인 2007.10.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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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장

백두산 하늘길이 열리는 것을 반겨하는 한켠으로, 우리 모두
이 聖山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도 끝나고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하더라도, 이번 회담을 통해 남과 북이 오랜 대립과 반목의 구비를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 공존’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는 성과라 하겠다. 앞으로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이어지겠지만, 무엇보다 백두산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너무 설렌다.
듣기만 하여도 감동을 주체할 길 없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한민족의 역사를 열고 백두대간의 뿌리가 되어 우뚝선 聖山! 이 성스러운 곳을 한 달음에 달려가 안길수 있다니 말이다. 물론 백두산으로 향하는 하늘길이 실제로 열리려면 해결해야할 과제는 적지 않다. 항로도 정해져야 하고, 직접 비행기가 내릴 삼지연공항도 보수.정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해를 우회하는 항로로 접근한다 해도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생각하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이 반가운 소식을 접하면서, 중국에서 근무하던 2004년 여름에 어렵사리 백두산을 다녀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북경에서 항공편으로 연길까지 간 후, 다음날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 여섯 시간이상을 꼬박 달려서야 백두산어귀에 닿을 수 있었다.
아스라히 백두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짙은 암록색을 띤 산록은 아무에게나 全身을 함부로 내보일수 없다는 듯 옅은 안개에 감싸인채 영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백두산에 안기고 싶은 마음에 여장을 풀자마자 곧장 지프로 갈아타고 정상으로 향했다.(차를 타고 오른다는 것이 靈山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현지사정상 어쩔 도리가 없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목마다 쭉쭉 뻗은 침엽수와 키작은 관목의 군락, 이름모를 야생화가 차례로 우리를 반겨주고, 발아래로는 초록으로 뒤덮인 일망 무제의 대평원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다. 마침내 정상부. 지프에서 내려 약 100여미터를 한달음에 뛰어 오르니 아아! 거기에 天池가 있었다.
우뚝우뚝 솟은 영봉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지극히 순수한 남빛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신령스러운 물. 몰상식한 관광객들은 다시 장백폭포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天池물에 손발을 씻고 물장구도 치곤 하지만(심지어 현지상인들은 물가에서 라면까지 끓여 팔기도 한다), 나는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못난 탓에 이 聖所가 기나긴 세월을 아픈 상처로 고통 받고 있거늘, 자숙은 커녕 함부로 범접하고 훼손해서야 될 말인가!
백두산의 아픔은 무엇을 이름인가?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시절에 일제는 교활하게도 백두산의 최고봉인 將軍峰을 느닷없이 兵士峰(또는 兵使峰)으로 격하시키고, 그들의 연호를 따 大正峰이란 황당한 이름 까지 갖다 붙여놓았다.
중국은 또 어떤가? 그들은 백두산을 長白山이라 칭하고 淸朝의 발상지로 여겨 성역화하는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광활한 만주땅에서 한민족이 쌓아온 역사의 자취를 송두리째 지워버리려는 이른바 ‘東北工程’과 맥이 닿아 있음이다.
무엇보다도 일제가 저 간교한 간도협약을 통해 淸나라와 뒷거래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힘없이 물러서 있음으로써, 간도지방을 상실함은 물론 백두산을 우리의 영토로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게 된 것을 두고두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