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에 부는 정보와 검증’
‘선거판에 부는 정보와 검증’
  • 신아일보
  • 승인 2007.07.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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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일 총무국장

" 정치지도자에게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고
자기 억제를 통해 도덕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존립 근거가 되는 가장 중요한 정치 과정이다 조지프 슘페터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선거를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는 도덕성 전문성 대표성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선발하여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에 기초하여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무능력하고 부도덕하고 편파적인 문제 있는 정치 지도자가 선출된다면 민주주의는 증오의 정치, 부패의 정치로 전략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유지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언제부터인가 검증은 우리사회의 유행어가 됐고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정도로 선거에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이렇게 검증에 의해 후보들의 당략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정도라면 유권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대선 후보자의 검증은 마땅히 그가 지도자가 될 만한 그릇인지 사상은 건전하고 국가이념에 위배되지 않는지 내세우는 공약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밝히는 것이라야 한다. 그 일은 전적으로 선거보도라는 중책을 맡은 언론의 몫이다. 선거공보나 연설을 옮기는데 그쳐서는 올바르고 충분한 선거 보도라고 할 수 없다. 그가 입후보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전 인격을 균형 있게 포괄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언론 특히 신문이 해야 할 의무이다.
이 작업에는 찬반 양론이 있다. 엄격하게 비밀로 해야 할 입후보자의 개인 생활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 반대론의 핵심이다. 그런 반대론 때문에 선진국에서조차 입후보자니 공직자의 사생활을 들추는 보도에 대해서는 반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카톨릭에서 성인을 선출할 때 그들을 후보자의 ‘뼛속에 남아있는 결함’까지 찾기 위해 이른바 악마의 변론자(devils adv ocate)를 지명해 완벽한 검증을 맡긴다.
성인이 되려면 그만큼 완벽해야 되다는 뜻인데 종교적성인 못지 않게 중요한 정치적 직위 즉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도 ‘피 속에 녹아있는 결함’까지 검증 받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언론이 사생활 침해라는 핑계로 보도를 하지 않은 다면 건전치 못한 후보자가 당선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갈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자의 경력과 자금사정을 포함한 사생활은 어디까지 밝힐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각급 선거에서는 아직도 후보자들간의 공허한 말의 응수만이 지면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런가 시험과 모험을 위험시하는 언론의 현실 안주와 관성에 젖은 우로 나란히 식 보도폐단 탓이다. 그런 폐단을 고치는데는 효과적인 자제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언론이 선거보도에서 조차 권력을 지향하는 후보자의 전 인격을 제대로 전달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권력 편들기가 된다. 후보들이 내놓고 약속하는 정책이나 공약의 허점을 검증하는 일은 선거보도를 맡은 언론만이 할 수 있다. 투표라는 공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정당이나 후보자가 숨기고자 하는 진실까지 밝혀 내는데 언론은 주저할 필요가 없다.
선거하는 사람 즉 국민 대다수가 올바른 후보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는 정당이었다. 다만 정당의 구분이 정책 이념이 아니라 여당이냐 야당이냐, 전라도냐 경상도냐, 성씨가 어디냐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는 낡은 정치인들이 지역 연고나 패거리 정서에서 못 벗어나고 있을 때 국민은 경제위기 이후 달라진 경제환경과 늘어난 불확실성에 불안해하며 뭔가 새로운 비전을 갈구했다. 그래서 인물선거로 간 것이다.
누가 미래를 책임질 개혁비전을 가졌는지 직접 후보를 보면 따진 것이다. 게다가 국민이 대통령 후보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성 수준은 성인이나 종교지도자에게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다. 시민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 불과 할 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당연히 도덕적인 사람이 여야하며 거기에 당연히 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21세기의 사회적 경쟁력은 투명성에서 온다. 공적 행위의 장에서 숨길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발전하는데 정치판은 구 정치체질을 탈피하지 못한 채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올 선거도 인물 싸움이 되기 쉽다. 그만큼 인신 공격 역시 거셀 것이다. 이런 과제를 해결해야 할 선거에 즈음해 유권자들의 도덕적 결단이 더욱 요구된다. 정치가 들의 저질 정치로 우리사회는 정채돼 있다. 국민의 정치적 결단만이 이 모순을 혁파하는 길이다. 유권자들은 정당에 대한 연대감도 없고 후보자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바도 없지만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발전적인 정치를 위해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모순을 보면서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보여 주겠다던 분노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고 자기 억제를 통해 도덕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찾기 위해 검증하는 것은 선거의 필수 과정이다.
그러나 사회의식이 그런 것을 요구할만한 수준에 도달하도록 국민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선 되어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바로 국민인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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