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계약’ 강요 우려가 현실로
‘백지계약’ 강요 우려가 현실로
  • 신아일보
  • 승인 2007.06.0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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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1일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효,
국가 및 지방 자치단체의 기관 포함 공공부문 사업장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

“하루빨리 정규직으로 전환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동료들간에도 벽을 허물고 업무성과도 높아질 것 같습니다” 한 은행 주부행원은 다음달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효돼 비정규직 ‘꼬리표’를 떼고 주변 직장 동료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 부푼 마음에서 한 말이다.
최근 한 중견 유통업체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재계약 과정에서 계약 기간표시를 빈칸으로 두는 ‘0개월’계약을 강요하는 등 갖가지 방법의 초 단기 계약을 동원해 물의를 빚고 있다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마찰은 노사가 모두 예견했던 상황들이다.
특히 다음달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다는 이유로 오는 30일은 무더기 계약 해지를 하기로 알려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정규직) 근로자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려면 2년여 가량 지나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회사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이 임박해지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오히려 계약 해지로 내몰리는 등 좋지 않은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7월1일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효된다 국가 및 지방 자치단체의 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 사업장 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이 대상이다.
내년 7월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4%수준이다. 직장 내 각종 복지나 사회 보험 가입비율에서는 더 열악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차별 받은 ‘2등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37%에 이른다.
그렇다고 ‘가슴’으로 접하면 사태는 더 꼬인다. ‘2년 이상 근무자의 정규화’는 2년 후인 2009년 7월부터 적용되는데도 기업들은 벌써부터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다.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판에 정규직 채용은 늘릴 이도 없다. 일부 공기업이나 지방 자치단체 는 비정규직 해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비정규직이 근무기간 2년을 채우기 전에 대부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들어 놓는다 비정규직은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거꾸로 비정규직을 해고로 내몰리 게 된 것이다.
정부는 최근 대상사업장 근로자와 기업주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차별시정 안내서’를 내놓았다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차별시정 판례가 축적될 때까지 참고 자료로 활용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경총이 즉각 안내서 지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항의성 성명을 내 놓는 등 기세다툼이 만만치 않다. 노동부가 법률적 효력이 배제된 안내서 형태로 마무리하려는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입법이후 시행령을 둘러싸고 노·사 양측이 모두불만을 표시한 가운데 ‘제2의 비정규직투쟁’ 도 계속되고 있다하지만 7월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발표된 안내서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은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핵심은 ‘합리적 차별’의 해석과 적용이다. 안내서는 ‘임금 휴가 학자금 등에 대한 평등’을 강제하면서 ‘합리적 차별’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합리’를 둘러싸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사 분쟁이 발생할 것인지 뻔하다.
파견 근로자도 마찬가지다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파견사업주와 사용 사업주는 파견 근로자임을 이유로 사용사업주의 사업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 전 법률에 비해 비교대상자를 구체화하고 차별 시정절차 및 과태료 부과조항이 추가됐지만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대한 시각차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경총은 이를 ‘정확히 일치해야’로 좁혀 해석해야 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정규직의 59%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안정이고 66%는 비정규직 법 시행 때의 실직가능성이 가장 두렵다고 밝혔다. 차별 시정도 좋지만 자칫하다가 일자리 없는 무늬만 평등이 될 판이다 이런 속사정을 뻔히 아는 민주노총이 차별시정의 의지가 약하다며 비정규직 법 등에 반발하는 것은 표리부동한 행태다.
대기업 노조가 고 임금과 철 밥통 고용으로 기업경영을 압박하자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늘려 인건비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정규직 노조가 근로조건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하지 않으면 현신 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시정 하기는 어렵다.
투쟁과 시위로 얼룩졌던 입법이전의 상황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앞으로 비정규직 차별시정은 정리해고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의 기준이 확립되기까지 수많은 판례가 뒷받침 됐듯 차별시정 역시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례축적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그때까지 갈등 비용은 최소화하려면 사측은 ‘비관세 장벽’ 과도 같은 보이지 않은 차별을 줄여 나가야한다. 각종 비 법정 수당이나 관행적 휴가 임금의 잣대가 될 수 있는 권한 책임 생산성 업무 영역에 대해 구체적 기준 설정방안 등이 제시 됐어야 했다.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정규직의 해고가 유연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 정규직 채용도 비정규직 의 정규직 화도 기피할 것이다 그래야 기업과 근로자 경제가 모두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