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있어 더 고통스럽다’
‘자식있어 더 고통스럽다’
  • 신아일보
  • 승인 2007.06.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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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결혼하면 6촌’

효(孝)는 늙을 노(老)와 아들자(子)가 합쳐진 글자다 설문해 자는 아들이 늙은 어버이를 업고 있는 모양을 본 딴 글자라 했다 그래서 인지 효에 얽힌 전설이나 설화가 유난히 많다.
심청이 가 있고 부모의 병세를 가늠하기 위해 변을 찍어 맛봤다는 상분의 고사도 전해진다.
김구 선생도 ‘백범일지’에서 ‘단지(斷指)나 할고(割股)는 진정한 효자가 할 수 있는 것이로다’라고 했다 선생은 병세가 위중해진 아버지를 위해 단지를 결심했으나 어머니께서 마음 아파할 것 같아 활고 키로 했다 백범은 허벅지 살을 베긴 했으나 떼 내지 못하자 자신의 불효를 한탄했다 얼마 전 ‘지게’에 아흔이 넘는 아버지를 지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온 40대 아들도 요즘 보기 드문 효자다.
얼마 전에 종로 3가 전철역에서 만난 노인은 ‘아들도 결혼하면 6촌이란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고 한다 자식에 사실상 버림받고 법적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기초 생활 수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새삼 시선이 쏠린다.
지난해 6월말 현재 65세 이상 독거 노인은 83만 여명 2010년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사 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느니 애완견 보다 서열이 낮다느니 말이나 되는가. 배고픔과 추위도 무섭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외로움’이라고 한다 물론 농담이 섞인 말이지만 효에도 자본의 논리가 끼어 들어있는 세태를 느끼게 한다.
돈이 있어야 효도도 받는다는 현실이다.
‘효의 실용주의’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입맛을 다시게 되다 유전유효(有錢有孝) 무전무효(無錢無孝)한 일부 돈 있는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집에 대소사에는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인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독거 노인들에게는 ‘자식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며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가면서 대학 졸업시키고 결혼시켜 놨지만 이제는 짐작 취급한다’며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들이니 노인을 헌신짝 취급하는 정부나 매 한가지다라고 말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보살펴야 할 1차적 책무는 물론 국가에 있고 그것이 정책적 방안은 사회 안전망 확충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회안전망 밖에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맞물려 노인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국가적인 재앙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노인들의 현주소는 통계청이 내놓은 ‘고령자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노인복지 관련 예산은 일반 회계기준으로 0.4%에 불과하다 70세 이상 노인의 5명중 1명은 홀로 사는 노인이다. 노인 인구의 월평균 소득은 비 노인 가구의 38.7%에 불과하고 그나마 자녀들이 보내주는 생활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공적 연금수급 자는 아직 16.8%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건강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노인들의 우선 관심사안이다. 노인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노후준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였다. 대부분이 노후 자금을 준비하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자녀 양육비를 꼽았다. 그러나 노후를 자녀에게 기대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후에 지장을 받지 않는 범위에서 자녀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부모 노후 준비하려고 애들 교육을 안 할 수 없지 않냐고 한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올인 해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면 은퇴 후 부모는 자녀에게 짐이 된다’며 “자녀교육과 노후준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노인 세대들은 감각적인 삶을 지향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즐긴다 신세대 노인 층은 이른바 퉁크 족이다 자녀들을 분가시킨 부부단독 가구들이 자기들만의 삶을 즐긴다.
혈연 관계보다 강력한 공동체 단위는 없다 하지만 돈을 강력한 혈연 관계 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돈을 위주로 한 가치관의 밑바닥에는 거리낌 없이 겉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1980-90년대를 그치면서 ‘민주화나 세계화가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권력이나 권위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치였지만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자리잡았다. 또 금융위기 이후 명분이나 체면은 초월한 실용주의 화가 뿌리내리기 시적 했다 이런 가운데 가족 구성원 사이에 수직적 상하관계도 무너지면서 행동기준이 바꾸기 시작했다. 게다가 욕망에 솔직해 졌고 돈의 가치가 자식간 혈연간계 조차 실용주의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사안이 시급하고 영향력이 심대하다.
독거 노인은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보듬어주는 훈풍이 우리사회에 가득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