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의 SWOT] 오리온, 성장 속 깊어지는 고민
[박성은의 SWOT] 오리온, 성장 속 깊어지는 고민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3.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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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매출 해외 비중 70% 육박 '글로벌 제과왕국' 자리매김
허인철 주도 바이오·물 신사업 드라이브, 성과는 '안갯속'
중국·러시아 정치적 긴장관계 '불안'…사드사태 반복 우려
초코파이를 비롯한 오리온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초코파이를 비롯한 오리온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제과왕국 오리온은 식품업계 ‘비욘드 코리아’ 전략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오너 담철곤 회장의 깊은 신뢰 속에 4연임에 성공한 허인철 부회장, 이승준 사장을 주축으로 국내를 넘어 중국, 베트남, 러시아를 중심으로 성장을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바이오’와 ‘생수’로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는데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전망이 나온다. 또한 중국, 러시아의 잠재된 정치적 리스크가 잘 나가는 글로벌 제과사업 발목을 잡진 않을지 노심초사한 상황이다. 

◇강점: 히트상품 다수, 흔들림 없는 성장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제과 영토를 넓혀왔다. 국내 제과시장 선도기업이자 해외에서 K-과자 열풍을 이끌고 있다. 제과 전문매체 ‘캔디 인더스트리’가 발표한 ‘2023년 제과업계 글로벌 Top(톱) 100’에서 오리온은 전년과 동일한 12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이자 11년 연속 Top 15위권 내에 들며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다.

‘글로벌 오리온’ 중심에는 초코파이가 있다. 초코파이는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연간 23억개 가량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간식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하지만 경쟁력이 단지 초코파이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포카칩·꼬북칩·스윙칩·오감자와 같은 스낵은 물론 고래밥·예감·다이제·고소미 등의 비스킷, 마이구미·왕꿈틀이를 비롯한 젤리, 후레쉬베리·카스타드를 포함한 파이까지 베스트셀러 다수를 운영 중이다. 또 닥터유, 마켓오처럼 각각 건강과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국내외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다양한 제과 포트폴리오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도 흔들림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최근 3년간(2020~2022년) 매출액은 2조2298억원, 2조3555억원, 2조8732억원으로 증가세가 지속됐다.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5.1% 증가한 4667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 1분기는 글로벌 경기불황에도 선방했다는 평이 나온다.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6% 늘어난 6638억원이다. 영업이익은 높아진 원가부담 탓에 8.7% 줄어든 991억원이다. 

◇단점: 부진한 물 사업, 상한 자존심
오리온에겐 ‘아픈 손가락’이 있다. 바로 ‘물’ 사업이다. 최근 4연임으로 장수 CEO 반열에 오른 허인철 부회장이 주도했다. 허 부회장은 2019년 11월 ‘제주용암수’를 직접 선보이며 생수시장에 뛰어들었다. 미래 먹거리인 제주용암수는 ‘에비앙’, ‘피지’ 등 유명 생수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 수준의 미네랄워터를 표방했다. 제품 디자인은 롯데 디자인경영센터장으로 발탁돼 화제가 됐던 배상민 당시 카이스트 교수가 맡아 많은 공을 들였다. 허 부회장은 제주용암수를 국내 톱3 생수 브랜드로 키워 글로벌 생수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출시 4년 가까이 된 제주용암수의 존재감은 기대에 못 미친 수준이다. 제주용암수는 그간 ‘닥터유’ 브랜드에 편입되고 신제품 ‘닥터유 면역수’로 제품군을 다각화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국내 생수시장 점유율(업계 추정)은 1%대 수준에 매출 126억원(법인 별도기준)을 기록했다. 같은 제주 원수(原水)를 쓰는 1위 제주개발공사 ‘제주삼다수’는 점유율 40% 초반대, 3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이즈’에서 3조원에 가까운 오리온과 3500억원 규모의 제주개발공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허 부회장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일이다. 

허인철 부회장이 2019년 11월 신사업으로 추진한 ‘제주용암수’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오리온]
허인철 부회장이 2019년 11월 신사업으로 추진한 ‘제주용암수’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오리온]

허 부회장은 제주용암수의 출구전략을 해외로 찾고 있다. 최근엔 중국 수출을 위해 현지에서 ‘칭따오맥주’를 유통·판매하는 회사와 협약을 맺었다. 중국 이전엔 싱가포르, 미국, 베트남, 러시아 등지로 진출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오리온의 주력인 중국에서조차 빛을 보지 못할 경우 물 사업 전반이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회: '바이오'로 피보팅
허 부회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10월 중국의 국영 제약기업 ‘산둥루캉의약’과 합자법인 설립을 위한 체결을 맺으면서 중국 제약·바이오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오리온이 제과를 넘어 바이오로 ‘피보팅(Pivoting, 사업방향 전환)’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3년여가 지난 오리온은 현재 ‘오리온바이오로직스’와 중국 합작회사 ‘산둥루캉하오리요우생물기술개발유한회사(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을 전개 중이다. 오리온바이오로직스 역시 난치성 치과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했다. 이 외에 바이오 기업 ‘큐라티스’, ‘지노믹트리’에 각각 결핵백신, 대장암 조기진단 기술 도입을 목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다. 성과 면에서 가장 먼저 기대되는 건 결핵백신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7월 중국 산둥시에 1만5000여평 규모의 결핵백신 생산공장 부지를 확보했다. 내년까지 900억원을 투자해 최첨단 백신 생산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허 부회장은 바이오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그룹 신성장동력으로서 바이오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자신했다. 결핵백신을 시작으로 합성의약품, 바이오의약품 등 유망기술을 순차적으로 발굴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일각에선 오리온 바이오 사업에 물음표를 갖는다. 제과와 별다른 접점이 없는 제약·바이오를 핵심 신사업으로 삼기도 했거니와 특성상 인적·물적 투자를 지속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힘들게 과자로 번 돈 바이오로 날리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실제 바이오 사업에 재도전한 CJ제일제당은 자회사 ‘CJ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레드바이오(생명공학 활용 의학·약학 응용기술)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최근 3년간(2020~2022) 누적 적자 규모는 매출 대비 4배에 가깝다. 

◇위기: 잠재된 정치적 리스크
‘글로벌 오리온’을 뒤집어보면 그만큼 대외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2조8732억원에서 해외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특히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은 1조2749억원으로 전체의 44%다. 상하이·광저우·선양을 중심으로 4개의 오리온 공장이 가동 중이다. 올 들어 중국시장 성장세는 주춤하다. 1분기 중국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3.5%, 22.6% 줄어든 2642억원, 383억원에 그쳤다. 한국·러시아 법인 영업이익이 증가했음에도 중국에서 급감하면서 전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 

오리온의 중국 상해공장 전경. [사진=오리온]
오리온의 중국 상해공장 전경. [사진=오리온]

더욱 우려되는 점은 정치적인 리스크다. 현 정부가 미국, 일본과 ‘관계 정상화’라는 전제로 동맹을 강화하는 반면에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G7 정상회담 이후엔 중국 외교부와 주한 중국대사가 우리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반한 정서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한국 식품사들은 한동안 맥을 못 추렸다. 오리온도 2016년 중국에서 1조3460억원의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이듬해 사드 사태 여파에 794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수년의 인내와 투자 끝에 1조2000억원 후반 대까지 회복했으나 지금의 잠재된 정치적 리스크는 최대 불안요소다. 

또한 현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러시아 시장을 키우고 있는 오리온 입장에선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오리온은 지난해 러시아 세 번째 생산시설인 ‘트베리 공장’을 가동했다. 올해는 젤리·파이·비스킷 신규라인 증설 투자를 계획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오리온에겐 부담이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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