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때 아리랑을"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유언 이뤄지다
"장례때 아리랑을"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유언 이뤄지다
  • 이인아 기자
  • 승인 2023.05.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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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6·25전쟁에서 생존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질베르 호펠스씨가 향년 90세 일기로 별세했다. 8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 남동부 레미히 지역에서 거행된 장례식장에서는 그의 유언대로 '아리랑'이 추모곡으로 울려퍼졌다. 

9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 따르면 호펠스씨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현지에 있는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1951년 5월 입대했던 호펠스씨는 군 복무가 끝나갈 때쯤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다. 이듬해 3월 부산에 도착한 그는 당시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벨기에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에서 생존한 그는 1953년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호펠스씨는 침략당한 나라의 자유를 되찾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참전 뒤 20여년 만인 1975년 재방한했을 때를 언급하며 "당시에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과 새로 들어선 많은 건물에 낯선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호펠스씨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국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생전 서재에 '장례미사에서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장을 조카 파스칼 호펠스(62)씨가 발견했고 이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게 알렸다.

박미희 한인회장은 호펠스씨의 유언을 받들어 미사 중 특별 순서로 아리랑을 불렀다. 연주는 고인이 참전 뒤 재직한 현지 세관의 관악단이 맡았다. 

호펠스씨 부인은 수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유족인 조카 파스칼씨는 "지금으로 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 먼 나라에 자원해 갔는데, 그런 삼촌이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인들이 참전용사의 헌신을 잊지 않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호펠스씨가 고인이 되면서 룩셈부르크 내 6·25 참전용사 생존자는 2명으로 줄었다. 

[신아일보] 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