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치양극화 고착화시키는 팬덤 정치 
[데스크칼럼] 정치양극화 고착화시키는 팬덤 정치 
  • 주진 정치부장
  • 승인 2023.03.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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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정치부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 후폭풍이 거세다. 

일부 친이재명계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은 이른바 '수박 색출'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수박이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비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들 사이에선 비명계 의원의 실명과 지역구를 명시한 '수박 리스트', '차기 총선 낙선 명단' 등이 유포됐다. 여기에 민주당 이탈표 37명의 배후라는 죄명을 씌워 이낙연 전 대표를 ‘영구 추방’하겠다는 청원을 올렸다.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출당·징계, ‘대선 출마 1년 전 대표 사임’ 당헌 예외 규정도 촉구하고 나섰다.

의견이 다르다 싶으면 지지하는 정당 소속 의원한테도 문자폭탄과 좌표찍기, '18원 후원금'이 난무하는 게 민주당의 현주소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은 “나치 시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고 십자가 밟기를 강요했는데, 민주당에 이런 정치문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폭력적인 팬덤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강성 지지층들은 당원들의 직접참여민주주의이자 당내 민주주의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과 의견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행동은 구분해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세력, 이른바 ‘윤핵관’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특정인들을 제거하거나 밀어주는 술수를 폈다. 

대표적인 게 당 대표 유력주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을 억지로 끌어내린 것과 이번 전당대회에 당권주자로 나선 안철수 의원에 대한 종북몰이다. 친윤계는 '종북좌파가 안철수 의원을 띄운다'며 과거 민주당 이력, 존경하는 인물로 故신영복 선생을 꼽은 일 등을 놓고 맹폭했다.

그러자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신영복 선생의 베스트셀러 책을 읽은 수많은 국민들도 다 종북 좌파입니까?”라며 친윤계를 향해 대차게 따져 물었다. 천 후보는 “우리 정치가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달라도 죽음 앞에서는 늘 겸허해 왔다”며 “우리 모두 정치를 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무릎을 탁 쳤다. 명쾌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함께 갈 수 없다는 게 윤석열식 정치다.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거부해 취임 후 단 한 번의 회동조차 갖지 않은 것은 초유의 일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같은 당 안에서조차 서로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공격하는 비이성적인 행태가 바로 팬덤정치의 핵심이다.

국내 주요 4대 학회(한국경영학회·한국경제학회·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 학자들은 윤 정부 들어 가장 악화한 분야로 ‘정치적 양극화’를 꼽았다. 건강한 정책과 노선 경쟁 대신 계파 싸움과 권력 투쟁에 사로잡힌 정치권과 이를 떠받치는 강성 지지층의 팬덤 정치가 편가르기식 진영 논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도 극단적인 이분법 논리가 정치적 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에 대한 불신과 대립은 격화되고 갈등의 골은 깊게 패였다. 이념과 진영에 대한 확증편향은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게 눈과 귀를 막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소설가인 장 자크 루소는 ‘좋은 정치가 좋은 시민을 만들고 나쁜 정치가 사나운 시민을 만든다’고 했다.

실제 최근 우리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과 만족도도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UN 국민행복순위는 조사 대상 149개국 중 59위를 차지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삶의 만족도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38개국중 36위에 그쳤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기대수명 등 객관적인 평가지표는 OECD 평균 이상이지만 선택의 자유, 사회적 지원, 사회적 신뢰, 너그러움 등의 항목에서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글로벌경제 장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난방비, 전기료, 택시비 등 생활물가가 급등하고 금리상승으로 인한 원리금부담 증대로 국민 생활은 더욱 더 고통스럽고 힘겨워졌다.

정치의 본질은 민생이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는 희망이 없다. 여야 정치권의 ‘권력놀음’을 지겹도록 지켜보는 국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아일보] 주진 정치부장

jj72@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