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허울 좋은 세계 1위, 씁쓸한 대호황
[기자수첩] 허울 좋은 세계 1위, 씁쓸한 대호황
  • 최지원 기자
  • 승인 2023.01.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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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악조건을 뚫고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시장 세계 점유율 1위(58%)를 차지했다. 특히 역대 최고 선가를 기록 중인 대형 LNG 운반선은 전 세계 발주량의 70%를 수주했다. 대형조선사들은 모두 연간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다. 그야말로 대호황이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조선업계는 고질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0만명을 넘었던 조선업 근로자 수는 2022년 9만5000여명으로 급감했다. 현장 투입 생산직은 올해 연평균 1만여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선업계 인력난은 극심한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2016년부터 단행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숙련공 상당수는 이 시기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을 이유로 조선소를 떠났다. 그 때의 여파가 대호황을 맞은 지금에서야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정부는 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차질 없는 선박 생산을 위해 부족한 현장 인력을 외국인으로 긴급 대체키로 했다. 

그러나 외국인력은 국내 전문 인력 대비 업무 숙련도를 높이기 어렵다. 또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만큼 중대재해 노출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가 제시한 외국인력 카드는 지금 당장이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거기다 외국인력마저도 열악한 처우로 조선업을 떠난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조선소 경력만 20년을 넘긴 지인이 건축 분야로 옮겨간지 오래다. 현장 인턴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 재학생은 열악한 근무 요건에 결국 입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선소가 평균적으로 하루 15만원을 준다고 가정하면 타 업종에서는 약 25만원을 준다고 한다. 중요한 대목이다. 정부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조선업계 차원에서 나서는 임금 개선과 고용 안정 의지다. 임금과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이들이 조선소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 하청 이중 계약구조를 개선하고 원청에서부터 임금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을 줄여 고용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임금과 고용 안전성, 근무 여건이 개선된다면 사람은 알아서 모이게 된다.

세계 1위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선소 현장 처우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일할 사람이 없는 현장에서 산업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다. 배를 만드는 건 정부도, 기업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frog@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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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