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신종 전도
[기자수첩]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신종 전도
  • 이인아 기자
  • 승인 2023.01.20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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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보이스피싱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명절 인사나 택배 배송안내, 코로나19 정부지원금 신청, 모바일상품권 증정 등을 사칭해 문자로 이용자에게 접근한 다음 돈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문자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인터넷주소 링크를 보내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지원금 신청대상자에 해당된다며 온라인 접수센터 홈페이지 주소 링크를 보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미싱을 통해 전송된 문자 내 인터넷주소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 앱이 자동 설치되고 이 앱을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 사기 같은 금전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제공한다거나 대출수수료 명목의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지인을 사칭해 금융처리에 필요하다며 서류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업차 외국에 자녀를 보낸 한 여성은 자녀가 무엇을 따내는 데 갖가지 서류와 돈이 필요하다고 하여 처리해줬다. 그리고 이틀간 자녀와 카톡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화상대는 자녀가 아닌 보이스피싱범이었다.

돈이 여기저기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은행이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요청하면서 이틀간 쉴 새 없이 떠든 상대가 보이스피싱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자도 낚임을 겪은 적이 있다. 어느 날이다.

막간을 이용해 커피숍에서 '커멍'을 하다가 가게를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안에 사람들이 있어 기다려야 했는데, 뒤로 어떤 아주머니가 섰다. 이용 후 나와 손을 씻고 거울을 보니 언제 나왔는지 그 아주머니가 또 뒤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는 “어머~ 어디사세요?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나도 머리해야 하는데”라며 넉살좋게 말을 걸어왔다. 사는 지역을 말하니 본인도 그곳에 산단다.

같은 지역이라니 반가워서 최근에 간 미용실 3개를 말해줬다. 대충 말을 끝내고 나가려는데 미용실 이름과 위치 같은 것을 꼭 좀 알고 싶다며 휴대전화 번호 교환을 요구했다. 뜬금없어서 “아 네… 일단 나갈게요”하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아주머니는 테이블에서 볼펜을 가져와 기자에게 커피 옆에 있던 휴지에다가 자신의 번호를 적게 한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져보기 위해 카톡에 친구추가를 해 봤더니 남자 이름으로 돼 있었고 프로필 사진에는 나무로 된 큼지막한 십자가가 우뚝 찍혀있었다. 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십자가를 메인 사진으로 해놓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상이 좋으시네요~"하며 접근했던 수법이 이렇게 진화한 것인가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에는 질문도 “어디가시는 길이세요?” “길 좀 알려주시겠어요?”처럼 이어가기식 대답 유도형이 아닌 “퇴근하셨죠?” “이거 예쁘죠?”와 같이 일단 대답이 딱 떨어지는 형식으로 말을 건다고 한다.

상대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거나 감성을 자극해 이득을 챙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피해를 막기 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내 안의 광기로 이성을 철저히 감시해야 할 때다.

[신아일보] 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