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순(矛盾)'의 시대
[기자수첩] '모순(矛盾)'의 시대
  • 배태호 기자
  • 승인 2023.0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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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방패가 견고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이 방패를 뚫을 수 있는 물건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얼마 되지 않아 그 상인은 창을 자랑하며 '내 창은 날카로워서 뚫리지 않는 물건은 없소'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상인의 이야기를 들은 한 사람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됩니까?'라고 물었다. 상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절대 뚫을 수 없는 방패와 어떤 것이라도 뚫을 수 있는 창은 아무리 선전해도 양립할 수 없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내용으로 창과 방패를 뜻하는 한자 모순(矛盾)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행보에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연일 손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라임펀드 사태와 결이 비슷한 DLF 사태 관련 법원이 손태승 회장 손을 들어 준 만큼 이번에도 손 회장이 법원 판단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을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5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금융센터를 찾은 김주현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도 없이 소송 이야기만 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라며 "손태승 회장이 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금융기관들이 그간 수익을 내는 데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만큼 소비자 보호에 관심을 쏟지 않은 것"이라며 "법률적으로 무엇인가 해결하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중징계에 대해 법적 대응 없이 수용하면 자칫 또 다른 소송으로 우리금융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임 혐의 논란에 고심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 상황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금융당국 수장은 강도 높은 비난을 통해 사실상 손 회장이 법적으로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대한민국 국무총리 직할의 행정부 위원회며,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금융위원회설치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치, 운영되는 대한민국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다. 금융위원장과 위원회의 모든 권한은 '법'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 수장이 정당한 법적 절차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부적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모순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신아일보] 배태호 기자

bth77@shinailbo.co.kr